사진이 형식이 될 때
사진하는 이기본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한 일로 Canon의 AL-1이라는 카메라의 주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필름 20통을 선물로 주시면서 카메라에 필름 넣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카메라에 필름 넣는 법을 배우고 나니 선물로 받은 20통을 빨리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이야기한다.
찍은 필름을 동네 사진관에 현상과 인화를 맡기고 며칠을 기다려 그 봉투를 열어 볼 때의 설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막상 봉투를 열어 인화된 사진의 두께를 확인하면 늘 실망을 먼저 했었다. 제대로 찍힌 사진이 별로 없어서 인화된 사진이 몇 장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씨름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진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서점에서 책도 구입해서 독학을 시작하면서 사진은 나의 취미가 되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내게 다가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보았던 현실/현상이 사진이 되어 인화지에 고착되어서 언제고 사진첩만 열면 그때의 그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지금까지 사진을 해오고 있는 듯하다.
사진을 많이 좋아하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사진학과로 결정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과 미국유학,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으로 편입과 대학원까지..., 학생으로 1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시작한지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시게 되었다.
병명을 확인하는데 만도 여러 해를 보내고 나서야 아버지의 병을 호전시킬 수 있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많이 쇠약해지셨다. 아들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듯하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안했다. 다른 우리 가족들은 머지않은 날에 아버지의 부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을 그렇게 나약하게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고 나니 나는, 같은 남자로서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내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께서 아신다면 더더욱 힘이 드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즈음 내게는 많이 그리워했던 풍경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를 할 때 또는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보아왔던 자연, 그리고 시골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이나 시골의 모습이 있는 곳을 자주 찾게 되었다. 특별히 사진을 찍기 위해 자연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자연으로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처럼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자연에서 사진을 찍으면 가끔은 아버지 생각이 난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촬영하다 보면 종종 아버지를 뵙는 기분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건네시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촬영을 가게 된다.
처음에는 자연 대상에 대해 직접적인 방법으로 소재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인물 촬영을 하듯이 바로 면전에 대고 촬영을 하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자연을 관망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것은 하나의 자연 대상물에 집중하기보다는 서로 함께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자연의 현상, 그리고 그곳의 나. 나는 그것을 촬영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자연을 촬영하면서 그 대상을 아버지와 병치시킨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직설적이기보다는 조금은 관찰자의 느낌으로 관망하면서 자연과 그리고 아버지와의 조우를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009년부터는 장노출로 촬영을 많이 한다. 한 장을 촬영하면서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에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물론, 아버지 생각도 하지만, 요즘은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러면서 계절에 따라 더위도 느끼고, 추위도 느끼고, 차에 가서 음악을 듣다가 오기도 하고, 뭐 그러면서 촬영을 한다.
초기에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지금 사는 곳이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와 같은 동네이지만, 이미 많은 것이 변해서 어렸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전국을 다니면서 어렸을 때 보았던 그 느낌들을 찾아다녔었다. 유명한 곳은 촬영하지 않는다. 그저 느낌만 있으면 내게는 충분하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천의 영종도와 강화도를 중심으로 많이 촬영한다. 내 작업의 특성상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러다 보니 시내에서 그 날의 날씨를 확인하고, 오후에 해가 넘어가는 시간대에 날씨가 어떨 것인지를 예측해서 촬영을 가게 된다. 물론, 날씨와 상관없이 가는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촬영 다니면서 항상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만이 촬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촬영을 가고 오는 그 시간들도 내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거나 현상하거나 인화하는 것만큼 나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촬영은 보통 오후에 시작이 된다. 물론 점심때쯤 촬영지에 도착한다. 실제로는 목적하는 촬영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날 기분에 따라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만 정하고 무작정 이동을 한다. 적당한 시간대에 도착하는 곳이 그날의 촬영지가 되는 것이다. 점심식사를 위 해 움직이면서 그곳에 사시는 분들과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계속 그 마을을 배회한다. 어디에 삼각대를 설치할지를 염탐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해가 지기 1~2시간 전 즈음에 삼각대를 꺼내어 설치를 시작한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고, 필름을 끼우면서 그곳의 공기를 호흡한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아님 다른 곳으로 촬영지를 옮겨야 할지가 느껴진다.
설치가 끝나면 때를 기다리면서 생각도 하고 카메라 주변을 서성인다.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촬영을 시작한다. 촬영은 해가 넘어가고 1시간 후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면 숨을 고르듯이 천천히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을 한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촬영된 필름이 어느 정도 모이게 된다.
그러면 현재 출강하고 있는 상명대학교의 컬러암실로 향한다. 개인 작업실이 없는 관계로 상명대학교 컬러암실에서 촬영된 필름 현상과 인화를 하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을 하게 되면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이게 된다. 요즈음은 아날로그를 하기에는 주변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불편해졌지만, 사실 편하게 작업하려고 사진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서 별 상관은 없다.
필름카메라나 필름, 아니면 약품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마도 나는 아날로그 사진을 계속할 것이다. 물론, 촬영과 필름 현상 이후 후반 작업에서는 디지털의 접목이 병행될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인 지금의 방식은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