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나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벗어나고 싶다
미리보기

나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벗어나고 싶다

저자
하봉호 류병학 저
출판사
케이에이알
출판일
2021-12-29
등록일
2022-02-21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0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웹뷰어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1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오늘도 막 어둠이 걷히고 있는 낯선 오사카(大阪)의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마치 굶주린 승냥이가 먹이를 찾아 들판을 어슬렁거리듯 1983년의 나는 그런 모습으로 135mm 일안(一眼) 레프 카메라(Single Lens Reflex Camera)에 24mm 렌즈와 스트로브(strobe)까지 장착하고 매일 하염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오사카의 거리를 구석구석 헤매고 다녔다.

처음 사진을 배우며 들었던 ‘왜?’라는 의문이 점점 커져서 더는 감당이 안 될 때 어쩌면 뉴욕에 가면 답을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부단히 나갈 방법을 찾다가 좌절하고 어찌하여 오사카 예술대학(Osaka University of Arts)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대 중반 힘과 의욕이 넘치던 나에게 별 정보도 없이 툭 떨어진 곳 일본 오사카라는 땅은 내가 기대한 만큼 매혹적이지는 못했다. 한국과 비슷한 거리 풍경 그 거리에는 한국인과 비슷한 얼굴들이 있고, 비슷한 사회구조, 비슷한 교육시스템, 비슷한 사람들의 발상에 굳이 ‘왜?’ 이곳 오사카까지 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던 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답을 구해 이곳까지 왔는데 ‘왜?’라는 질문만 많아진 꼴에 하루하루가 답답하던 어느 날 문득 일본에 오기 전 심심할 때 가끔 했던 놀이가 떠올랐다. 나는 셀프-타이머(self-timer)를 걸은 카메라를 하늘 높이 던졌다 받아 보았는데, 내 손을 떠난 카메라가 공중제비를 하는 동안 내가 파인더를 보고 셔터를 누른다면 생각지도 못할 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난 그 놀이를 떠올리고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나의 의식을 빼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난 그 결과물을 몇 년 뒤인 1986년 니콘 카메라가 운영하던 갤러리(Nikon Salon)에서 ‘도시인(DOSIIN)’이라는 전시타이틀로 초대전을 하게 된다.

그 당시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그 대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 또는 나의 미숙한 미적 감각 나의 편협한 고정관념 등 이런 조악한 것들에 의해 카메라 앵글이 결정되고 셔터를 누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내 눈으로 보지 않고, 내 감각으로 느끼지 않고,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하물며 내 손가락으로 셔터도 누르지 않고, 나의 의식이 배제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그 미지의 영역에서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러한 작업을 하게 된다.

나의 오른손에는 광각렌즈가 장착된 135mm 카메라를, 왼손에는 소형 스트로보를 들고 마치 춤을 추듯 노파인더로 셔터를 눌러댄다. 스트로보는 번쩍번쩍거리고 흥이 난 나는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냥 리듬에 맡기고 셔터를 끊는다.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생각도 않고...

이러한 방법론은 결과물을 셀렉션(selection) 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것은 나의 의식을 가능한 배제 시키는 방법을 찾다가 택한 방법이다. 필름 사진은 네가 필름 상태에서는 정확히 뭐가 찍혀있는지 잘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밀착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포지티브 사진을 만든다. 나는 그 밀착 사진을 오려서 수북이 쌓아놓고 방 안에서 한 움큼 공중으로 집어 던진 후 뒤집어진 사진은 탈락 바로 된 사진은 선택이라는 극단적 셀렉션 방법까지 하게 된다.

나의 ‘도시인’은 이러한 생각과 촬영 방법에 의해 찍힌 다양한 스냅사진 중에서 사람이 찍힌 사진 46장으로 구성된 시리즈이다. 나의 ‘도시인(都市人)’ 시리즈에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불특정 사람들의 불안한 표정과 동작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찍혀있을 뿐이다.

- 하봉호 2020

QUICKSERVIC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