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내일이면 죽게 될 당신에게 악마가 찾아와 하루를 더 살게 해주는 대신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하나씩 없애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만약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세상의 어떤 것을 포기하겠는가?
하루를 더 살기 위해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작품 속의 나는 항상 곁에 있어 당연했던 것들을 하나씩 지우게 된다. 첫째 날은 전화를 포기함으로써 첫사랑과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둘째 날은 영화를 없앰으로써 첫사랑과의 추억과 취미를 포기한다. 내가 살아 있지 않으면 그것들 또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날은 세상에서 시계를 없앰으로써 시계방을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시계가 없는 세상에서 시계방도, 아버지의 일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시계방에 있다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 그로 인해 나의 원망의 대상이 된 아버지.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아픈 어머니가 아끼던 시계가 고장 났다는 말 한마디에 묵묵히 시계를 수리해온 아버지가 떠오른다. 원망은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향하고 있던 것일까.
그리고 넷째 날, 이제 악마는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키우던 고양이를 소멸시킬 존재로 지목한다. 고양이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존재이자 행복한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다. 나의 버팀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다면 혼자일 앞으로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아마도 절망적이지 않을까? 고양이의 소멸은 곧 나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