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법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담아내지 못한 ‘진짜’ 로마 이야기
▚ 왜 다시 로마인가?
2013년 11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대통령의 연설이 갑자기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민개혁법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큰 소리로 “강제추방을 멈춰 달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경호원들이 연설을 방해한 청년을 끌어내려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경호원을 제지한 뒤 “당신의 열정을 존중한다”며 청년에게 경의를 표하고는 민주적인 적법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을 상세히 부연 설명해 청중을 설득시키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로마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전으로 향하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향해 한 여인이 “당신은 로마를 통치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경호원들이 황제에게 불경을 저지른 그녀를 향해 칼을 뽑지만, 황제는 칼을 거두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그녀의 간절한 청원을 들어준 뒤 다시 자신의 길을 간다. 로마에는 이렇게 황제에게도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있었고, 지도자들은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려 2000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도층의 관용과 포용 정신’이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여전히 ‘나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는 나라를 위한 충언조차 귀담아듣지 않고,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에 반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이들에게 연일 위협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극심한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에 발목 잡힌 한국 사회의 발전이 정체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로마와 21세기 한국 사회의 대담한 결합을 시도한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는 하드리아누스처럼 지도자들이 관용과 포용의 정신으로 패자를 다독이고, 승복한 패자는 승자를 위해 헌신하며 모두가 화합을 이뤘던 고대 국가였다. 또한 국가의 뼈대인 중산층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지도자들은 시민을 위한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펼치며 화합을 도모했다. 여기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어우러지며 로마는 외치(外治)와 내치(內治)의 균형을 이뤄내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번영을 이룩한다. 재기의 기회를 부여받는 약자와 패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지도자, 정치와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 2,000년 로마 역사에는 이처럼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상적인 사회가 갖춰야 할 여러 조건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 답은 로마에 있다
이 책은 로마의 역사 속에서 여전히 한국 사회에 부족한 성숙한 시민정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독특한 역사비평서다. 저자는 고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구현한 로마인들에게 모두 14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로마가 건국 이후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던 비결을 담고 있는 1장 ‘로마의 진정한 힘’에서는 주변 국가의 위협 속에서도 로마가 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정치력으로 수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로마인만의 관용과 포용 정신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관용과 포용이라는 로마인의 기본 정신은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사회분열을 막을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또한 패자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황제가 될 수 있었는데, 고대 국가로는 너무나 파격적인 이러한 유연함은 로마인 모두가 로마를 위해 헌신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2장 ‘시민의 힘’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의무를 외면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모습을 소개하며 성숙한 시민사회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로마는 왕정-공화정-제정의 순으로 정치체제가 변화했다. 저자는 로마의 정치제제가 변하는 과정 속에서 각각의 시기에 일어난 로마의 시민운동 역사와 그 사례를 설명한다. 저자는 지도자와 시민들이 상호견제 속에서 균형을 맞춰나간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하며 사회 체제의 변화를 위해서는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로마의 힘에 주목한다.
‘지도자의 노력’을 다룬 3장에서는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로마의 지도자와 지도층 인물을 소개하며 진정한 리더십의 진수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실리만큼이나 명예를 중요시했던 로마의 지도자들이 앞장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례들을 전하고 있다. 또한 공정한 사회를 위해 엄격한 절차에 맞는 법을 집행한 사례들도 함께 소개하며 현대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 로마인을 다룬 ‘진짜’ 로마 이야기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몰고 온 열풍 덕에 2013년에 다시 언급되고 있는 1990년대의 한국. 15년 전인 1990년대 후반, 한국에는 로마사(史)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촉발시킨 로마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경제발전과 보다 민주적인 정치발전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을 충족시켰다.
로마 역사를 통해 시대의 화두에 답을 구한 경우는 이후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간된 로마사 관련 서적들은 한계도 분명했다. 시오노 나나미를 위시한 대부분의 로마 전문가들은 독재자 아우구스투스를 극찬하는 등 로마의 제국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일반 로마 시민들이 이뤄낸 값진 성과들을 축소하면서 ‘로마인의 역사’가 아닌 ‘지도자 위주의 로마 역사’를 전했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 황제 혹은 로마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로마 역사가 아닌, 시대 변화에 융통성을 보이며 유연하게 적응한 ‘로마와 로마인의 진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같은 로마의 대표 인물뿐만 아니라 호르텐시아, 토르콰투스 등 기존 저술들에서는 언급되지 않거나 무시됐던 로마사 바깥의 인물과 사건들까지도 새롭게 조명한다.
이렇듯 이 책에는 격변의 시기를 통과해왔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로마 대중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담아냈다. 이는 독자들에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로마에 대한 새로운 인물과 역사적 정보는 물론 로마사를 기존의 제국주의나 사대주의 시각이 아닌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