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 (개정판)
지금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 간의 소통을 디자인하고, 집단지성과 협력을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일 것이다. 이것은 이제 이 시대 리더들의 핵심 역량이다. 더욱이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리더들은 자신과는 다른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자신과는 다른 경험,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양성을 통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발산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리더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자유롭게 소통시키는 것은 그들의 잠재력을 귀중한 자원으로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위험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우려와 동시에, 각자가 자기 의견만 주장하다가 결론도 없이 끝나거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을 리더들은 걱정한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리스크가 적은 일방적인 소통과 제한적인 의견수렴만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를 줄여서 구성원들이 가진 잠재력을 포기하기에는, 사람들이 가진 소통의 욕구가 너무 크다. 수많은 리더들이 참여로 인한 혼란의 리스크를 줄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가진 잠재력을 촉진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실천적인 지식과 스킬을 제공하고 있다.
퍼실리테이션의 역사가 짧지만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야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에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반면,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예로, GE의 잭 웰치 전(前) 회장은 워크아웃(Work out)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GE를 표범처럼 민첩한 조직문화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6년여에 걸친 실행으로 조직문화의 혁신을 이루었다.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은 ‘일을 쉽게 하다, 촉진시키다’의 의미이며, 일반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의 집단 의사소통을 돕는 활동으로 해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히 대체할 단어가 없어서 어려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회의, 포럼, 컨퍼런스, 워크숍, 강의 등에서 사람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해답을 찾거나, 계획을 세우고자 할 때, 그 과정을 돕는 활동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라고 한다. 리더십 강의나 전문 워크숍 프로그램에 주로 활용되던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의 참여 욕구가 증대되면서 가족회의에서부터 대규모 컨퍼런스까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최근 10년 사이에 참여라는 말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왜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방식이 중요할까? 첫째는 서로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혼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여러 사람들의 지식을 공유하여 집단지성으로 끌어내고자 함이다.
간혹,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며 여럿이 모이면 오히려 시간만 낭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도 어려움에 봉착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최소한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성과가 기록된 책이라도 들쳐보게 된다. ‘생각 모으기’를 제대로 경험해 본다면 그 효과를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는 높은 실행력을 얻을 수 있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주도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성과급만으로는 임직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동기부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룹 의사결정의 방식을 채택하여 업무 당사자들을 회의석상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안건을 내고, 대책을 세우며, 의사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자기가 맡은 일의 시작부터 관심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의 경우,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매우 안정적이고 질적으로 높은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런 집단 의사결정 방식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능력이 계발되게 되는데, 이것은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관제탑의 지시만 기다리는 부속품이 아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엄청난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일을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된다. 대의를 염두에 두고 머리를 모으고 서로를 촉진해주면서 진정 필요한 일을 창의적이고 신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성과도 최대가 되는 법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활동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리더들이 일 좀 제대로 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듯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는 기술과 기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퍼실리테이션 스킬과 기법들은 소통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리더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루한 이론서가 아닌, 두 명의 국제 공인 퍼실리테이터가 그동안의 활동에서 틈틈이 기록해 놓은 깨알 같은 노하우를 정리한 것이다. 때로는 노트에, 때로는 가슴속에 새길 만큼 뼈아픈 수업료를 치른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던 것까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은 최대한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믿는 긍정적인 신념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추상적인 영역임과 동시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도구, 다양한 기법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타인의 대화를 경청하고 명쾌하게 요약하거나 기록하며, 적절한 질문을 던져서 논의를 발산하고 수렴하는 등의 노련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몸에 배어야 하는 실질적인 리더십 역량이기도 하다. 소통을 고민하는 이 시대의 리더들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제대로 된 실전 스킬을 활용하여, 소통과 협의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구성원 간의 신뢰와 친밀함으로, 침체된 조직의 활력을 되찾는 신선한 변화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모든 기업들과, 시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할 사회단체, 미래의 리더를 양성하는 학교의 수많은 교실에서, 종교단체와 정부기관 등 이 땅의 모든 조직에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많은 리더들에게 실천적인 지침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