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4
책 소개 시골 산골에 내려가면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나이가 많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도시생활 탈출기가 아니라 시골산골에 처음 들어가 겪는 잔잔한 일상생활이다.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당한 일 마을 이장과 겪은 일 닭을 기르면서 엄청난 소리와 빠삐용(영화를 참조하기 바람)처럼 잡지도 못한 일 농사를 지으면서 속았던 일 초보 농사꾼(저자는 사이비 농사꾼 이라함. 천 만 원을 들여서 수확한 작물은 1/4에 불과하기에) 부인이 반대해도 끝까지 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함)이 유기농을 재배하는 일 마을에 파리가 많다고 농사도 짓지 못하면서 충동구매로 윗동네 소 농장을 사버린 일 기르던 개가 하늘나라로 간일 거기에 감칠 맛나게 손녀 사랑은 주과목이며 며느리 자랑은 덤이다. 부부싸움은 기본이며 화해는 덕담이다. 아내 사랑은 침묵이자 진정이고 싸움은 현실이다.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빼지 않고 주변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부가 다투기도 하면서 사랑과 전쟁을 그려낸다. 때로는 홀로 지내는 과정을 시냇물처럼 그려낸다. 물론 홀로는 외롭지만 아닌 것처럼 존심도 굳굳히 지켜낸다. 그는 할아버지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소년시절부터 꾸어왔던 꿈속의 전원주택이 드디어 천등산 박달재 인근에 완공시키면서 수많은 사진으로 자랑한다. 시골산골 적응기는 부럽게 하면서도 미소를 만든다. 도시 생활에서 전원 주택을 꿈꾸는 사회인은 많다. 도시 탈출이 유행처럼 되어있지만 직접 겪는 것은 어렵다. 귀촌을 위한 7가지 조언도 깨알같이 재미난다. 젊은 사람이 하는 조언과는 다르다. 전원일기를 보는 듯 하지만 산골 일기라는 제목이 휠씬 잘 어울린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그리고 동양화를 서양식 유화로 그린 느낌이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글 쓰는 내공도 내공이지만 많은 사진이 글을 돋보이게 한다. 직접 기른 채소와 야채 고구마는 기본이다. 농사짓는 모습 마을 전경 개 닭 이웃집 사진에 표시까지 곁들였다. 사계절도 담았다. 이름도 모르는 식물을 보여준다. 알아맞히는 사람에게 고구마 한 박스의 현상금도 내건다. 서부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은근슬쩍 로또가 맞은 것처럼 제목을 정해 눈으로 보는 사람을 낚시질도 한다. 웃어야 할지..... 이 밖에도 사진은 소소한 것까지 나온다. 마을 다방 까지. 저자의 꼼꼼함은 사진에서 보여준다. 장난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과연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궁금하다. 욕도 하지만 구수하다. 사람에 따라 같은 행동도 여러 가지 느낌을 준다. 욕이 욕 같지 않은 언어로 은근히 감정에 호소한다. 수많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 하나하나에 깨알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많은 사진이 있어서 용량의 거의 최대치에 가깝다. 동화책은 아니지만 사진을 글을 도욱 돋보이게 만든다. 보시면 끄떡 끄덕은 자동이다. 읽어보면 책 소개가 있는 그대도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치판단은 다르지만 나의 판단은 재미있다. 몇권을 책을 썼지만 이렇게 쓰기는 어렵다는 것이 생각이다. 저자는 어떤 직업으로 생활을 했는지 모르지만 개그맨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물론 성공 실패는 나도 장담을 못한다. 표지 소개 - 저자가 직접 촬영한 수많은 사진 중에 몇가지. 책 속에는 많은 사진과 설명이 있다. 책 속으로 오~! 주여~! 이 못난 죄인을 구원하셨나이다!!! 30년도 훨씬 넘는 옛날(?)의 일이다. 직장생활에 신물이 난 나는 중구 다동의 허름한 빌딩옥상 층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고‘오퍼’업을 시작했다. 재미나는 사실은 내가 입주한 그 사무실이 훗날 세계를 누비던 대우실업의 김우중씨가 봉제업을 시발점으로 하며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무실이라는 유혹에 혹시 그 양반의 기라도 받아보겠다는 잔머리를 굴리며 허름함에도 주위의 시세보다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리고 결론부터 얘기하면 사업은 잔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성실과 근면 그리고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만 얻고 나의 1차 사업은 쫄랑 망하고 길거리에 나 앉았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대표할 만한 아이템은 없고 워낙 잡다한 물건들을 취급했기에 몸만 바빴지 큰 실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된 신문(나는 예나 지금이나 조선일보 충성판데 조토마나 조블에서 나 같은 충성파에게 섭섭하게 하는 때가 많다. 왜 자꾸 삭제신공을 날리는지?)을 읽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종이비누” 아마도 그때가 수출의 날 또는 발명의 날 기념식에 대한 신문기사였을 것이다. 세상에 종이비누라니? 아! 이거 장사 되겠다...고 생각하고 급히 그 회사를 수소문하여 방문을 했다. 지금은 기억에 사라졌지만 종이비누를 만든 회사가 을지로입구든가 아니면 청계천 입구에 소재하고 있었기에 내 사무실이 있는 다동과는 지척이라 혹시 다른 경쟁자가 먼저 달려올 것 같은 강박관념에 단거리육상선수처럼 달려갔던 것이다. 여러 형태의 종이비누가 있었지만 테이프처럼 감겨있어 쓸 만큼만 뜯어내어 사용하는 종이비누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더 인상적인 것은 그 종이비누를 만든(발명)사장님과의 상담이었다. 상대에게 조근조근 항상 미소를 지으며 응해주시던 그 후덕하고 인자한 인상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그 이후 가격이 높았던지 내 능력이 부족했던지 그 비즈니스는 유야무야 되었고 종이비누는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구러 세월이 10수년을 지나 나는 인천의 某공단에서 가내공업 수준의 제조업을 하고 있었다. 소위 프리미엄 아이템이라 하여 어떤 제품을 팔면 끼워주는 아니면 무슨 행사에 하나씩 줄 수 있는 일종의 선물용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평의 某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회사의 제품을 대량구매 하고 싶으니 방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업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 내 공장의 제품을 대량구매 하겠다는데....인천과 부평은 지척간이라 이번에도 혹시 다른 경쟁자가 먼저 달려올 것 같은 강박관념에 람보르기니나 바이마흐를 모는 자동차경주 선수처럼 신나게 달려갔던 것이다. 무슨 배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소위FRP(유리 및 카본 섬유로 강화된 플라스틱계 복합재료)로 유람선을 만들어 한강에 띄우는 회사라고 했다. 담당자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배 만드는 현장설명도 해주는 등 많은 친밀도를 보여주었지만 원가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하며 납품을 하라는 것이라 이 또한 유야무야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두 회사는 내 기억 속에 사라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625난리는 난리도 아니게 온 나라를 난리 이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연일 TV에 비추이는 인자한 인상의 사나이가 눈에 익은 얼굴이다. 저 사람을 어디서 봤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좀체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유병언 유병언...역시 골백번을 되뇌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다. 아! 어디서 봤더라!? 나는 어떤 궁금증이 생기면 잠을 못자는 버릇이 있다. 지난 4월 하순 약 보름간의 북미여행에서 시차적응도 문제가 됐지만 인자한 인상의 유병언이라는 인물 때문에 더 잠을 못 잤다. 분명 어디서 보긴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가 계속 이번 중국출장지까지 따라 다녔던 것이다. 중국 거래처와 상담을 하면서 마침 견출지가 필요했다. “라오반! 견출지 있어?” “물론 있지...”그러면서 거래처의 사장이 가져온 견출지는 평판으로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돌돌 말려 있었고 나는 그 돌돌 말린 견출지를 보는 순간 경악을 하고 말았다. 그래! 맞아! 종이비누 근 40년 전 종이비누를 발명했다고 신문(조선일보)에 대서특필됐던 그 사람. 그 발명가가 유병언이었어!!! 종이비누 유람선 세모 오대양 청진해운 유병언 중국거래처의 견출지 한 타래가 나의 40년 가까이 묵은 궁금증을 쾌도난마로 풀어 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도 한다. 유병언과 아니 그의 사업체와 나의 비즈니스가 연결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내가 비즈니스 상 깊숙이 맺어 졌다면...???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서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오~! 주여~! 이 못난 죄인을 구원파로부터 구원 하셨나이다. 할렐루야~! 아멘! 주제어 산골 선동거사. 시골 전원 생활 귀촌 재미 생활 즐거움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