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고, 네가 틀려!
나의 견해는 정말 옳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옳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평소에 흔히 경험하는 견해 차이, 입장 차이 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벼운 일상의 대화로 시작된 진지한 철학적 논쟁
“서로 입장이 다를 때 이는 정말로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렸다는 뜻일까, 아니면 각자 자기 입장에서는 옳다는 것뿐일까? 어느 한쪽만이 옳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상대방에게 그가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 할 수 있을까?”
비판하고 논쟁하며 자기 견해를 다듬는 옥스퍼드대 인문 프로젝트
차분한 논리적 추론에서 격한 개인적 대립까지… ‘확신’을 ‘의심’으로 바꾸는 철학적 질문들
그리고 불통 앞에서 분통터지는 당신을 위한 철학의 조언
철학 초심자와 전문가, 모두를 위한 책
티머시 윌리엄슨은 옥스퍼드 대학 위컴 논리학 교수이며 동세대 주요한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서, 주된 관심 영역은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언어철학 분야이다. 그는 첫 책 《내가 옳고, 네가 틀려!》(원제 Tetralogue-I'm right You're wrong!)에서 고전철학 정신을 되살려 현대철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플라톤’의 전통을 따라 네 사람이 나누는 (가상의) 대화를 기록하며, 현 시대 철학적 쟁점을 풍부하고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네 사람. 담장이 왜 무너졌는가 하는 의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진실과 거짓, 전통과 과학, 앎과 믿음, 확실성과 의심,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도덕과 가치판단에 대한 논쟁으로 점점 확대된다. 등장인물 가운데 철학자는 한 사람도 없지만, 이들의 대화는 충분히 철학적이고도 심오하다. 하지만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으며,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견해 차이로 곤란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그 철학적 해법에 대한 사려 깊은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철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익숙한 철학의 추상적 논의들이 일상생활 속 구체적 질문들 속에서 어떻게 재발견되고 응용되는지 신선한 영감과 지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견해는 정말 옳은 것일까?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 필요한 때 묻는 철학적 질문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은 철학의 고전적 방법으로 존중받긴 하지만 잊혀져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진리인가 되묻는’ 태도는 시공간을 초월해 유의미할뿐더러, 오늘날처럼 ‘오만과 편견’이 득세하는 시대에 그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그러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전혀 다른 세계관을 지닌 네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사를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잣대로 파악하는 과학주의자 세라.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며 마녀의 존재를 믿는 전통주의자 밥. ‘진실’과 ‘거짓’의 잣대를 내세우는 절대주의가 현실에 미친 폐해를 비판하는 상대주의자 자크. 세상만사의 논리적인 근거를 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논리주의자 록사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의 생생한 입담은, 마치 대사가 끊이지 않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들은 선명한 입장 차이만큼이나 사사건건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그 과정에서 철학의 주요한 논제들을 쏟아놓는다.
비판하고 논쟁하며 사유하는 지적 즐거움
담장이 무너져 다리를 다친 밥은 그것이 평소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웃집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라는 그러한 밥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으며,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진실이라 믿는 밥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자크는 모두에게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 시도한다. 록사나는 이들 대화의 논리적 허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본격적으로 논쟁에 불을 지핀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격한 모습도 보이지만, 오히려 대화가 깊어질수록 차근차근 논리적 개념을 짚어나가는 이들의 논쟁은 일상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수사학 교과서라 할 만하다. 사실, 인용, 정의, 비유, 추론, 반전, 조합 등 촘촘히 얽힌 토론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익히도록 돕는다. 이들 사이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더불어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지 깨달아간다. 그 모습이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논쟁하는 데 있어, 기술보다 더 중요한 태도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끔 이끈다.
내 입장도 옳고 네 입장도 그르지 않다
-불통의 시대, 평화적 공존을 위한 철학의 조언
과학만이 세상을 설명하는 유효적절한 도구인가? 진실은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가? 동등한 신뢰가 없다면 동등한 존중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1장 섣부른 중재)
‘진실’과 ‘거짓’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절대주의와 독단주의의 위험이 뒤따르는가? ‘의견’과 ‘사실’ 그리고 ‘진실’과 ‘확실성’은 어떻게 다른가? (2장 진실의 함정)
모든 의견은 항상 오류가능성을 지니는가? 앎을 주장하는 데에는 입증의 책임이 따르는가? ‘나는 안다’는 말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의 차이는? (3장 오만의 근거)
도덕적 믿음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와 어떻게 다른가? 과학적 문제와 달리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룰 수 없는가? (4장 도덕의 약점)
사실 대다수 사람이 생활 속에서 심한 견해 차이를 경험하지만, 이들만큼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하고 수용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섬세하게 발전시켜 나가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이들의 최초 주장은 다소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찬반 토론을 거치는 동안 미묘한 생각의 결이 다듬어진다. 마지막에 합의된 결론을 내지도 않고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사람도 없지만, 그 입장은 분명 최초의 주장과는 차원이 달라져 있다.
저자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상대를 설득하려 끊임없이 애쓰는 네 주인공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의 궁극을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이러한 개인의 차원보다 더 큰 국가, 종교, 세대, 갖가지 집단 간 견해 차이가 존재하며, 이는 이성과 합리를 넘어서 살인이나 전쟁 등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입장 차이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이론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평화롭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두 입장의 차이를 중재하려는 피상적인 시도는 어느 쪽 입장도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입장 차이를 조정할 때 고려할 만한 뿌리 깊은 문제들을 성의를 다해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