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지구
시 쓰고 빨래하고 날씨 걱정은 가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의
시인 서윤후와 함께 나서는 여행길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준 만큼
걸어야 했던 산책이었다.”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의 서윤후 시인이 쓴 여행 에세이
글만큼이나 감각적인 사진도 함께 실려……
2009년 스무 살의 나이로 등단한 서윤후 시인. 지난 2월에 출간한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에 이어 첫 산문집 《방과 후 지구》를 펴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틈틈이 다녀온 ‘지구’ 여행을 바탕으로, 시집과는 다른 분위기의 산문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묶은 책이다. 시인은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여행 지침서가 아니다. 여행 정보가 가득 든 책이 아니다. 걷는 이야기다. 걷다 보면 머뭇거릴 때가 있다. 멈춰 있다가 이윽고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순간을 모아 놓은 이야기다. 멈춰서 책을 펼친 순간에도 함께 걷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 책이다. …… 오늘도 걸었을 당신에게, 내일도 걸어야 할 내가 걸어온 이야기를 드린다.”
시인은 세계의 곳곳에서 걷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면서, 자신이 밟은 모든 발자국을 ‘산책’이라고 말한다. 산책이라는 말에는 이미 걷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도 한다. 시인은 대부분 혼자서 산책(여행)에 나서지만, 결국 하나의 길로 모여드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서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길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나란히 걷는다.
“나란하게 걷는다는 기분을 선사해 주는 사람은 나와 속도가 같아서가 아니라, 속도를 엿보고 맞춰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행복이다.”
여행은 ‘내가 나를 미행하는 일’이다. 시인은 문득 여행을 떠났다. 막연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나를 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에 여행을 떠났다. 여러 번의 떠남과 돌아옴, 낯선 곳에서의 산책을 거친 시인에게 궁금증이 생겨났다. 여행을 어떻게 규정지으면 좋을지 질문했다. ‘질문이 질문을 찾고, 답변이 답변에게서 달아나는 미행’이 여행을 달리 부르는 별명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여행을 통해 시인은 자신을 새로이 알아 간다. 참을성은 없지만 ‘좋아하는 것에 한없이 열정적’인 면이 있음을 알게 되고, 말로는 걷기를 싫어한다면서도 계속 걷는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낯선 음식을 먹고, 낯선 언어를 듣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나의 낯선 모습이 드러난다. 낯설어진 나를 데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당신과 긴 산책을 즐기면 어느새 여행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몰라도 그만큼 걸어왔음을 서로 토닥여 주는 거야. 눈물이나 포옹 없이도 기꺼이 서로를 안아 주고 알아봐 주는 거야. 그렇게 당신은 나의 모험이 되고, 나는 당신이 떠나게 될 여행의 일부가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야.”
서윤후 시인이 직접 찍은, 글만큼이나 감각적인 사진이 책에 같이 실렸다.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인이 다녔던 곳을 상상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 가끔 놀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