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터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열시간이 넘도록 긴장과 흥분으로 잠시도 눈을 감지 못했다. 독한 위스키로 위를 적시고 또 적셔 봐도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뇌를 더욱 각성시키는지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고객님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어. 잊으려고 했지만 입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언어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승무원을 바라봤다. 한국 사람의 얼굴은 내게는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어도 곧 울어버릴 것 같은 모습. 승무원은 시원하게 이를 보이며 웃었다. 기묘한 편안함을 느끼며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한국어가 내 입에서 발음되어 나와 공기를 타고 타인에게 전달됐다. 부정하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 국적이 다른 나라라고 해도 내 외모와 내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되새기자 희한하게도 묘한 울림으로 가득해졌다. 목을 타고 오르는 뜨거운 기운,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물을 훔쳐냈다.
‘바보 같다. 정말 바보 같다.’
속으로 되뇌었다. 잊으려 한다고 해서 노력으로 잊어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어설픈 부정을 계속해 왔다. 가슴 속 가득 들어찬 한국에 대한 부정. 힘을 다해 내 안에 남아있는 한국을 밀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국이라는 잔재를 밀어내고 또 지우기 위한 반복. 하지만 피나는 노력은 단 몇 시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도 모자라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한국인, 나는 한국인이라고. 숨어있던 뿌리가 나를 한국으로 이끌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기억들은 조금씩 지워지는 과정이고, 그래서 죽기 직전에 쌓아올린 기억들은 모조리 지워져 갈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굳이 아픈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지우려고 잡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언젠가 이 말을 했던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고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진한 여운을 남기고, 그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이다.
내가 조금 더 말을 잘할 수 있었다면. 이러한 기분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의 작은 시트에 몸을 기대어 조그마한 수첩 위로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들을 여과 없이 빼곡하게 적어내려 갔다. 그 중 가장 많은 단어를 차지하는 글자는 단연 ‘한국.’ 내게 정체성의 혼란을 주었던 두 음절의 짤막한 한국이라는 단어. 수첩에는 한국이라는 단어들로 가득 퍼져나갔다. 뿌연 안개로 휘둘러 쌓인 단어는 장막으로 드리워져 있다.
이제 곧 한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개 속에서 서성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한국 상공 위에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 도착하기 10분 전.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비행기의 앞머리를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돈은 얼마라도 상관없었다. 나를 미련과 지옥의 끝으로 밀었던 세계를 앞두고 두려움에 몸서리 쳐야만 했다.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래서 접어두어야만 했던 한국을 온몸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째깍째깍, 혼란했던 머릿속이 멈춰져 있던 한국 시간으로 맞춰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