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꼭 해야 할 말이 생겼습니다
은유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글쓰기의 최전선』을 내고 저자는 한 인터뷰 말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내가 안 써도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안 쓸 것 같고, 내가 꼭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쓰지 않을까.”
저자가 글을 써 온 이력은 남다릅니다. 글쓰기의 정규 코스를 하나도 밟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서 일하다 노동조합 상근 활동가가 되었고, 결혼 뒤에는 일을 그만두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여자, 엄마, 아내로서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썼습니다. 쓰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서른다섯 살에 사외보에 글을 쓰며 자유 기고가로 ‘데뷔’를 했고 한 잡지에서 인터뷰로 연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회적 기업에서 잠시 일을 했지만 쓰는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움을 깨닫고 그만두었습니다. 저자에게 쓰기란 아마도 삶과 동의어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쓸’ 수 없으면 ‘살’ 수도 없었던 것이 아닌지. 이렇게 쓰기를 목숨처럼 여긴 저자가 그간 자신이 쓸 때 등을 밀어 주었던 작가들이 쓰기에 관해 한 길고 짧은 말들을 뽑아, 이 쓰기의 말들로 자신과 쓰기의 삶을 돌아봅니다. 이 말들은 글 쓰는 사람 은유를 만든 쓰기의 말들이고,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저자가 ‘꼭 해야 할’ 말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쓰는 사람이라는 기적
“나는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 처음부터 쓴다는 목적을 가진 건 아니었다. 시작은 읽기였다. 그러니까 독학이 아니라 독서였다.” ‘생활 문장가’ 은유의 출발은 읽기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닿는 문장을 차곡차곡 수집하는 독자. 그렇게 문장을 하나둘 쌓던 독자는 어느 순간 저자가 됐지요. “읽기에서 쓰기로 전환은 우연히 일어났다. 자유 기고가로 ‘글밥’을 먹게 됐다. 문예창작과나 국문과,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이 아니고 책 읽는 생활인인 나는 살짝 긴장했다. 별도의 창작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작법을 몰랐다. 글쓰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냥 쓰지 않고 잘 쓰고 싶었다.”
‘교환 가치 없는 글은 버려’지는 냉혹한 세계에서 저자는 자신과 쓰기를 단련했습니다.
“내 글을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본다는 마음으로 공을 들였고, 그 글을 거짓말처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신망을 얻어 글 쓰며 생활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저자에게 글을 쓰게 하는 힘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헤쳐 가는 우리의 처지일 겁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쓰기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냅니다. “사회의 불의와 참상이 극에 달할 때 인간은 글을 쓰며 존엄을 지켰고 최고의 작품을 낳았다. 평범한 내 인생도 그랬다. 내 삶은 글에 빚졌다. 예고 없는 고통의 시간대를 글을 붙들고 통과했다. 크게 욕망한 것 없고 가진 것 없어도 글쓰기 덕에 내가 나로 사는 데 부족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해,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쓰자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인간을 부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이 책이 그들의 존재 변신을 도울 수 있을까.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