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행로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요즘 《덕혜옹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영화화된 작가가
소설집을 내놓았다. 소설집에서 작가는 단편미학의 정점에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가가 11년 만에 내놓는 중·단편 소설집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의 피란만장한 삶의 되살린 장편소설 〈덕혜옹주〉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종종 소설을 픽션 즉 허구라 치부하지만, 소설에서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잊혀진 역사적 인물을 현실 속에 불러 독자들에게 새롭게 조명시켜 살려놓고는 한다.
소설의 대중적 호응에 힘입어 영화화가 결정되어 〈덕혜옹주〉가 8월 3일 개봉된다.
한국영화 〈부산행〉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흥행의 쌍끌이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고 한다.
특히 주연인 손예진의 연기가 이목을 끌고 있어 개봉 전에 화제성을 몰고 왔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저자는 불쑥 11년 만에 창작집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아마 갈증이 아니었을까?
연극배우들이 대중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흥행에 성공해도 연극무대에 서는 심정과 같다고 할까?
대중적 인지도와 상업적 소설의 성공이 작가에게 성공을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설이 허구의 문학이지만 인생의 궁극에 질문의 화살을 겨눈다.
인생의 정답은, 만남의 의미는, 사랑의 질곡은, 파란만장한 삶은 왜 초라한 결실이어도 왜 위대한지 소설만이 독자들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단편 소설은 문학의 정수이자 본질일지도 모른다.
장편소설이 인생의 축소판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인생의 파노라마를 그린다면
중·단편은 인생의 단면을 통해 삶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 묻곤 한다.
삶의 궁극의 본질, 저자는 이 5편의 소설에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한다.
삶의 본질을 타자와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다
“타인을 읽어내는 일이 곧 나를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인생을 읽어내는 것이며 인간을 읽어내는 일이며 인간의 역사를 쌓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삶이 무엇인지 점점 모르겠다. 희망이라거나 혹은 절망이라거나 하는 따위의 감정도 사치다 싶을 만큼 삶의 골짜기는 깊다. 고독하고 눅눅한 생에 때로는 햇살 날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유한한 생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5편의 창작집을 통해 저자는 인생의 궁극의 본질을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탐색한다.
‘산동네 그 집에 있었던 일’에서 부부 사이 그리고 주인공 딸과 부모와의 관계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와 ‘소녀에게’에서 엄마와 딸
‘달의 행로’에서 자매 관계
‘그녀의 초상’에서 부부 사이까지
저자는 5편의 중·단편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어그러진 인간관계에서 서로는 절망을 보면서 희망을 키워간다. 그 절망은 엄마일 수도 아빠일 수도 언니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차피 누구나 다 고민을 짊어지고 산다.
저자의 현실에서 본뜬 허구 속 현실은 때론 독자에게 공감과 희망의 울림을 줄 수도 있다.
그 관계에 대한 모색이야말로 거울처럼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이라고.. 그러기에 5편의 중·단편에서 장편에서 볼 수 없는 많은 관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는 인간관계를 푸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장편소설만 득세하는 요즘 잘 짜여진 단편은 쉽게 정답을 얻지 못하지만 정답 퍼즐에 다가가는 느림의 진전이 속도를 강요하는 시대의 흐름에 작은 반전의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