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 위의 전쟁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사람다움’은 바둑 속에 있다
이 책의 특징 헤럴드경제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는 김영상 기자의 바둑에 대한 신념과 바둑을 통한 인생관이 담긴 에세이로, 바둑과 정치ㆍ역사ㆍ경제ㆍ경영ㆍ스포츠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알파고 다큐멘터리, 바둑의 오묘한 세계와 삶의 지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우리 미래에 대해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바둑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다
- 김영상이 이 책을 쓴 이유
저자인 김영상은 바둑을 좋아한다.
그는 헤럴드경제 기자로 일하는 동안, 여러 부서를 거쳐 현재 사회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전문 바둑기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과 알파고 세기의 대결 현장’을 자발적으로 취재를 한 것은, 오롯이 그가 바둑을 좋아하고, ‘바둑이 곧 인생’이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대결을 취재하기 전부터 꽤 오랫동안 한국기원을 취재했다. 이것도 그의 욕심이자 바둑을 향한 고집스러운 외사랑이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반상 위의 전쟁》이라는 바둑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을 쓰기까지 저자는 몇 번이나 고민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며 몇 번이나 취재했다. 순전히 바둑이 좋아서였고, 바둑이 곧 인생이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바둑 그리고 바둑에 대한 인생의 철학이 무엇인지 읽어보자.
차별 없는 인간, 남에 대한 배려심
그래서 바둑은 인문학이다
바둑은 공평하다. 내가 한 수 둘 때, 다른 사람도 한 수 둔다. 19 곱하기 19, 361개의 점에 내가 한 수를 놓을 때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수만큼 놓는다는 뜻이다.
바둑은 그림 그리기다. 종이에 하나씩 그려야 한다. 바둑은 ‘기다림의 미학’이기도 하다.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한두 번의 찬스가 와 돌을 둘 수 있다. 기다림과 그림 그리기와 공평함이 바둑을 만들고, 바둑은 직접 돌을 두면서 인생이나 정치·경제, 리더십을 일러준다.
사람들은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을 신기해했지만, 곧 비행기에서 떨어질 것을 걱정했다. 이번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람들은 인간이 두는 바둑을 인공지능이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긴다고 한들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인공지능을 만든 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우주의 진리를 담은 반상(盤上)에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다
바둑은 인간 삶을 대변한다는 반상(盤上)이다. 이 반상이 작게는 자연의 이치, 넓게는 우주의 진리를 담았기에 바둑은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우리는 지금까지 믿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에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인공지능을 만든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인간’ 이세돌이 졌다 하여 실망할 일이 없다. 인공지능이 진화하는 속도 이상으로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더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의 젊은이에게 이세돌 같은 프로바둑 기사보다 알파고 설계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를 꿈꾸게 하고, 제2ㆍ제3의 알파고를 만드는 창조성에 도전하게끔 해줘야 한다. 그것은 곧,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인공지능을 지배하며,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석이 없는 세상에
정석의 틀을 깨자
이세돌과 싸운 알파고는 정석을 거부했다. 처음에는 에러라고 생각했던 수가 나중에 보면 엄청난 노림수로 변해 있었고, 흔히 바둑 고수들이 높게 평가하는 정석보다는 비트는 수를 사용해 이세돌을 괴롭혔다. 3,000년 이상 군림해온 인간의 정석을 알파고는 비웃었고,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알파고의 한 수 한 수는 ‘어쩌면 인간만이 몰랐던 정석이 아닐까’하는 물음마저 던졌다.
우리는 바둑계 고수 몇 명이 알려주거나 실행한 정석에 의존해왔다. 그들의 착점 하나하나는 훌륭한 정석으로 정착했고, 그 정석을 탈피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수를 개발하거나, 창의적인 수를 발굴하는 데 소홀했다. 정석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정석의 틀에 갇혀 있었다. 계속 정석이라는 틀에 갇혀 발전 없는 삶을 살 것인지, 틀에서 탈피해 발전할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잡학이다
하지만 그 속에 인생 진리가 있다
이 책은 잡학이다. 바둑의 정석이나 기술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정치가 있고, 문화가 숨 쉬고, 역사가 깃들여져 있고, 스포츠가 자리한다. 저자는 오랫동안의 다양한 현장경험을 통해 정치, 경제, 기업, 문화, 스포츠 영역까지를 ‘바둑의 잡학’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잡학’이 일관성 있게 재구성되면서 놀랄만한 인생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철학은 다름 아닌 ‘바둑이 우리 인생의 스승이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역경과 고난,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는 인생에서 바둑만 한 스승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삶의 이치와 지혜를 담고 있는 바둑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팁도 던지고 있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기적처럼) 난공불락의 호남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일관성 있는 포석(정치 행보) 덕분이었다.”
“고대 앞 명물 영철버거가 망했다가, 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대인의 사랑이라는 ‘요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천하제일의 스피스가 쿼드러플보기로 마스터스 우승을 날린 줄 누가 알았는가. 바둑 ‘반전무인’ 용어를 체득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때 막강한 미국 자동차산업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가 망했던 것은 ‘아생연후살타’라는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리한 해설이 또 있겠는가.
저자는 반상(盤上)의 원리를 이해한 인간과 역사의 성공 사례와 바둑의 원리를 망각한 인간과 역사의 실패 사례를 바둑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바둑 문외한 또는 초보자들에게도 그래서 책은 더욱 쉽게 다가설 것으로 확신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은 거부할 수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를 간과하지 말라
인공지능 시대가 발달할수록 기술 권력 독점 세력을 견제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 서비스는 가능해지겠지만, 과연 이런 서비스를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을까? 아마 우수한 인공지능을 보유한 일부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강자가 된 기업은 계속 ‘절대적인 독식’을 꿈꾸게 되고, 이 자본 세력은 향후 인류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인공지능 기술 독점 견제와 더불어 제기되는 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다.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에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이 절대로 기계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인간만큼 진화할 ‘인공지능과의 공존’이 거부할 수 없는 새 가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하는 과제를 넘을 수 있느냐, 넘겨야 하느냐, 넘겨도 되느냐, 넘긴다면 어떻게 넘겨야 하느냐 등 논의는 언제나 유효하며 과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