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모험
직접 만들 줄 안다는 것, 그 힘
메이커 운동의 안내서이자 일탈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초대장
“오늘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메이커 운동이 미국 제조업 부활에 기폭제가 될 거라며 2천여 개 공립 초등학교에 제작 공간을 지원하고, 소프트웨어 코딩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우는 캠페인 ‘아워 오브 코드(Hour of Code)’ 운동을 독려했다. 원하면 무엇이건 쉽게 구매해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직접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신간 『손의 모험』의 저자 릴리쿰 3인(선윤아, 박지은, 정혜린)은 최근 주목받는 ‘메이커 운동’ 등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을 자신들의 3년간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 책은 소비사회의 풍경과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DIY, 해커링, 팅커링, 메이커 운동의 의미를 담아낸 전반부, 릴리쿰이 그동안 벌여온 유쾌하고 진지한 만들기 실험을 소개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손의 모험』은 국내외의 풍성한 사례로 현재 일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짚어주는 안내서이자, 소비사회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만들기의 기쁨’을 권하는 초대장이다.
만들기의 기쁨을 실험하고 권하는 사람들
릴리쿰은 도구와 기술을 공유하고, 외로운 창작자들이 관계를 맺고, 거래가 아닌 교환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각각 그래픽 디자이너, 도예가, UX디자이너로 일하던 저자들은 2013년 공동 작업 공간을 물색하다가 예정보다 큰 공간을 얻고 릴리쿰이라 이름 붙인다. 라틴어로 ‘나머지’, 잉여라는 뜻이다. 이들은 ‘잉여인간을 놀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보고, 일이 아닌 놀이로서 만들기를 시작한다. 창작 공간 네트워크 테크숍의 설립자 마크 해치 또한 메이커 운동의 기본 정신이 ‘만들고, 나누고, 배우고,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릴리쿰에 모인 이들은 영화 [비 카인드 리와인드]처럼 짧은 영화를 촬영해보고, 드론 대신 종이연에 카메라를 달아 날려보고, 아이폰을 뜯었다가 다시 조립하는 자기 수리를 시도해본다. 영화는 허접했고, 카메라를 단 연은 비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아이폰 액정은 결국 망가졌다. ‘월간 실패’라는 프로젝트를 만들 만큼 실패의 역사는 수두룩하다. 그러나 실패를 부르는 방법들을 굳이 택한다. 저자들에게 만들기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만들기 또는 제작이라고 하면 대개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절실히 필요한 것, 더 나은 생활 조건을 만드는 것, 더 지속 가능한 것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만들기는 바로 ‘놀이로서 만들기’일 것이다. 만드는 행위에 담긴 본연의 속성, 즉 만들기의 기쁨을 즐기는 만들기 말이다.
저자들은 ‘스스로 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사회에서 낙오하거나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은 곧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된다’고 말한다.
소비를 권하는 사회 vs 만들기로 저항하는 사람들
이케아 해킹이라는 것이 있다. 스툴 구성품으로 어린이 자전거, 옷걸이, 좌탁처럼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만드는 제작 활동이다. 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서는 저마다 만든 결과물과 제작 과정 등을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 해킹은 유쾌한 놀이이자 모험이다. 이렇듯 인터넷 기반의 공유 문화가 확산되면서 메이커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메이커’라고 새롭게 이름 붙여진 이들은 자신이 만든 것과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누구나 따라 하거나 개선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만드는 방법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만드는 도구나 설비의 비용이 싸지고, 더 다루기 쉬운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메이커 운동은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대안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르주 라투슈가 ‘계획적 진부화’라는 개념으로 지적했듯 프린터는 만 8천 매를 넘기면 출력이 불가능하게 조작되었고, 스타킹은 일부러 약하게 제조되어 쉽게 구멍이 난다.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것이 싸고, 고치는 것보다 사는 것이 싸다. 만들고 고칠 시간도 모자라다. 만들기는 한가하거나 호사스러운 취미로 여겨진다. 이런 시대에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그 결과물과 방법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쾌한 놀이인 동시에 작은 저항의 행동이 될 수 있다.
멀게는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운동부터 시작해 공공시설물에 뜨개를 씌우는 게릴라 예술운동인 얀 바밍과 최근의 메이커 페어까지, 만들기의 의미를 되짚는 것으로 시작해 만들기가 사라진 시대, 만들기로 저항하는 사람들까지, 이 책은 다양한 인문학적 개념, 30대 중반 여성인 세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 등 다채로운 예시를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일상에서 멀어진 ‘만들기’라는 행위를 곱씹어보고 자기 삶으로 끌어당기기를 권한다.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을 권함
수택(手澤)이라는 말이 있다. 쓰는 사람의 손때가 남아 물건에 생기는 윤을 가리킨다. 시간이 쌓인 물건에는 윤기만큼이나 그만의 가치가 생긴다. 하물며 직접 만들었다면 기쁨은 더 클 것이다. 저자들은 만들기란 “3D프린팅 같은 신기술이 아니라 각자가 삶의 주체가 되는 것. 주변을 둘러봤을 때 문제가 있다면 해결할 방법을 아는 것 혹은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나누려는 것은 만들기의 태도다. 저자들은 작업 공간을 열고 ‘4대 보험’ 없는 삶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이런 결단을 할 필요는 없다.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중 일부라도 스스로 장악하고 고쳐보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사회에서 낙오하거나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은 곧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된다.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당장 해커처럼, 탐정처럼, 예술가처럼 마음을 바꿔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