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한참 젊었을 때 할아버지의 ‘자서기’ 원고를 처음 읽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큰 감흥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지, 당신의 살아 온 이야기를 글로 남겨 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듯하다. 이후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다시 그 원고를 펼쳤을 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원고는 특히 한자와 일본어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꼼꼼히 본다고는 하였지만 실수가 있지 않았을까 염려가 남는다. 추후 발견된다면 고쳐나갈 일이다.
2012년에 아버지께 회고록을 써 보지 않으시겠느냐고 여쭈었다. 애초에는 아버지께서 구술하시면 내가 그 내용을 정리해 볼 생각이었는데, 차일피일 하는 사이 한두 달 시간이 흘렀고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다 써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이제 아버지의 팔순을 맞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고를 묶어 하나의 책을 만든다. 2, 30년쯤 후에 아버지께서 ‘다시 쓰는 회고록’을 이 책에 더하실 수 있다면 정말로 경사스런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쓴 이야기도 여기에 더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원고 정리에 애써준 나의 아들에게 치하의 말을 남긴다.
정청한(鄭淸漢)
동래정씨 운계공(雲溪公)파 32세손. 1935년 10월생. 철도공무원이었던 부친의 근무지인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하였다. 1.4 후퇴 시 가족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도보로 평양에서 경남 창원 고향마을까지 당도하였다. 마산상고와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방공무원으로 오래 근무하였다. 부인 송희수와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모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마산시 내서면 감천리에서 부인과 함께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정순현(鄭順鉉, 1908-1975)
동래정씨 운계공(雲溪公)파 31세손. 경남 창원시 상남면 출생. 일제 치하 심히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성실성과 노력을 바탕으로 관비장학생으로 일본 구마모토공전(熊本高工) 전기과를 졸업하였다. 일정 때와 해방 후 이북에서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였고, 1.4 후퇴 시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아 월남하였다. 귀향 후 부산제일공고, 마산상고, 경남상고, 부산공고 등에서 교편을 잡다 정년퇴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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