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부자유
“도발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나 간혹은 그 경계선을 허물어뜨리고 싶을 때도 있다. 단면에 국한되거나 머물지 않는 생각속의 시간여행은 오래전의 시대나 먼 미래까지라도 간극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역을 한정짓지 않는 광활한 정신의 사유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벨이 다시 한 번 울렸다. 그 소리는 최루가스처럼 예사롭지 않은 독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나없이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주경모는 예리한 눈으로 인터폰 화면을 주시했다. 문 좀 열어보십시다.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랬다. 기다려 보시오. 주경모는 현관의 붙박이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일중과 전수철을 바짝 불렀다. 그러면서 짭새들이야 라고 짧게 알려 주었다. 강일중과 전수출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을 날아가듯이 하여 붙박이장의 문을 열었다. 시간이 다소 지났어도 모의 연습의 성과는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강일중과 전수철은 수초 만에 다용도 붙박이장의 내부 합판을 밀치고 들어가 틈새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주경모는 그들의 구두를 붙박이장의 신발 대에 올려놓았고 큼직한 우산을 합판 모서리 면에 일부러 삐딱하게 세워 놓고서 붙박이장의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 대문 열림 버튼을 눌러도 되었지만 방문자가 누구인지 직접 확인하겠다는 것은 집주인의 마음이었다. 벨소리를 듣고서 주경모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시간은 어림잡아 삼십여 초쯤 걸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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