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저자
데이비드 벨로스
출판사
메멘토
출판일
2017-12-21
등록일
2018-02-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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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자의 선택
아메리칸 라이브러리 인 파리(American Library in Paris) 도서상 수상
2017년 봄 가장 기대되는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2017년 최고의 평가를 받은 책 -『리터러리 허브』

시대를 막론하고 동시대와 소통하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힘 덕분에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레 미제라블』은 끊임없이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작품”(마이클 린드그렌, 『워싱턴포스트』)이라는 평가가 있듯이, 이런 대중화와 각색, 축약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과 위고의 의도를 오해해서 갖가지 오류가 재생산되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전기 작가이자 번역가인 데이비드 벨로스는 “괴물 같은 분량에도 허술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는” 이 걸작의 가이드를 자처하며 전통적인 문학 비평을 초월해 언어, 정치, 역사적 맥락을 동시에 살피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파헤친다.

작품에 대한 전기라고 해도 좋을 이 책은 『레 미제라블』의 기원과 탄생, 출판과 반응,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 되는 전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위고가 혁명과 쿠데타, 정치적 망명을 겪으면서 어떻게 19세기의 대표적인 소설을 썼는지, 그가 『레 미제라블』의 출판을 위해 어떤 혁신적인 거래를 해냈는지, 사회 문제에 대해 그가 가진 접근법이 어떻게 당대와 미래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논의가 펼쳐진다.


“인류의 고통은…… 멈추지 않소.
인간이 무지하고 절망적인 곳,
여성이 빵을 위해 자신을 파는 곳,
어린이가 교육이나 따뜻한 가정이 없어서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라도
『레 미제라블』이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오.
문을 여시오. 당신을 위해 내가 왔소.”
―빅토르 위고가 이탈리아어판 출판인에게 보낸 편지(본문 348~349쪽)


1.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2012년 12월 개봉한 뮤지컬영화 〈레 미제라블〉은 연극, 음반, DVD, 원작 소설의 판매 열기를 견인하며 한국에서만 최종 관객수 590만 명을 동원했다. 출간된 지 150년이 넘은 이 원작 소설이 끊임없이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시대와 소통하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힘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작품”(마이클 린드그렌, 『워싱턴포스트』)이라는 평가에서 보듯이, 위고가 창조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인기를 끌고 대중오락물로 등장하면서 녹록지 않은 내용과 역사적 맥락이 잘못 이해되는 역효과가 생겼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전기 작가이자 번역가인 데이비드 벨로스는 “괴물 같은 분량에도 허술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는” 이 걸작의 가이드를 자처하며 전통적인 문학 비평을 초월해 언어, 정치, 역사적 맥락을 동시에 살피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파헤친다. 작품에 대한 전기라고 해도 좋을 이 책은 『레 미제라블』의 기원과 탄생, 출판과 반응,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 되는 전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위고가 혁명과 쿠데타, 정치적 망명을 겪으면서 어떻게 19세기의 대표적인 소설을 썼는지, 그가 『레 미제라블』의 출판을 위해 어떤 혁신적인 거래를 해냈는지, 사회 문제에 대해 그가 가진 접근법이 어떻게 당대와 미래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논의가 펼쳐진다.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위고의 삶은 『레 미제라블』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자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 왕정주의자였던 어머니, 그리고 십대 때부터 글로 생계를 꾸려갔던 문학 천재 위고가 어떤 역사적 격변을 거쳐 “기득권층의 든든한 기둥에서 망명자로, 눈부신 출세주의자에서 독립적인 저항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에서 진보적 운동의 대변인으로 변모”(33쪽)하는지 초점을 맞추어 서술한다. 이 극적인 변신에는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형성한 대결 구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하고 탄압받으며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레 미제라블』은 1851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친위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브뤼셀로 망명한 위고 자신이 배척당하는 인물이 되면서 초고보다 확대되어 영국 왕실령 건지섬에서 걸작으로 탄생했다.


2. 가난, 혁명, 계급에 대해 『레 미제라블』이 말하는 것

가난이라는 주제는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저자는 『레 미제라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가난과 빈곤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레 미제라블』이 이 개념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술한다.
“가난 앞에서 품위가 떨어지고 비천해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영혼은 많지 않다. 보통 서민들은 믿기 힘들 만큼 어리석다.” 이렇듯 18세기 말에 출간된 『백과전서』의 ‘가난’에 관한 항목은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곤경에 대해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절실하게 필요해야만 분발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낮은 계급’은 곧 ‘위험한 계급’으로 여겨졌다. ‘불운 탓에 비천해진 사람’에서 ‘돈이 부족한 사람’으로 빈민에 대한 의미가 점진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레 미제라블』이 있다.
장 발장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도 가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인간의 본보기다. 장 발장이 계속되는 물리적, 도덕적, 감정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를 거부하며 사회적인 계급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27쪽)

저자는 위고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두 가지 혁명을 서술하면서 그가 왜 이 두 혁명이 아닌 1832년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위고가 실제로 겪은 최초의 혁명은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표현한 1830년 7월 혁명이다. 그런데 사흘 만에 부르봉 왕조를 전복하고 루이 필리프가 정권을 잡게 된 사건에 『레 미제라블』의 초점을 맞추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위고 자신이 직접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내 아델이 넷째 아이를 출산하려던 참이었고, 『파리의 노트르담』 집필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필리프 왕정을 전복시킨 1848년 봉기는 어떨까? 1848년 2월 귀족원 의원이던 위고는 군대의 임시지휘관으로 2월 봉기에서 바리케이드를 내린 당사자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빈민 정책에 성난 노동계급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6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위고는 이때 제헌의회 의원으로 무장 폭도에게 계엄을 선포하고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말하자면 『레 미제라블』은 바리케이드에서 싸운 사람이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내린 군대의 임시 지휘관이 쓴 작품인 것이다. 1848년 혁명에 대한 경험은 위고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위고는 1848년 봉기 대신 루이 필리프 집권 초기인 1832년 6월 5~6일에 일어난 봉기를 작품 배경으로 선택한다.
그는 왜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작은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했을까? 벨로스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혁명이 원론적으로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고는 정확한 역사 기록과 당대 사람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1832년 6월 봉기를 재구성하면서 사실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그는 이 혁명을 성난 하층민이 주도한 저항이 아니라 학생들이 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으로 만들었다. 왜? 학생들을 동원한 것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싸우려고 하는 교육받은 투사들이 대화와 연설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한 동기도 제각각이었다. 위고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 모든 태도를 끌어안고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이었다.
위고는 혁명과 폭동도 엄격히 구분했다. 소설을 잘 살펴보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1848년 혁명의 의미에 관한 논평 대목에서 그는 민중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을 향한 비뚤어진 폭력은 진압해야 한다’고 쓴다.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데 자신의 기술을 이용한다. 위고는 총을 통해서만 진보할 수 있다는 앙졸라의 확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장 발장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이는 사람을 쏘는 것은 도덕적 진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297쪽)

저자는 또 『레 미제라블』이 진보적인 책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시련에 도덕적 분개를 표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유럽 좌파들이 오랫동안 고수한 경제원칙을 제안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해석 어느 것도 맞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중립적인 책이라는 것이다. 위고는 ‘계급’ 개념을 부정한(300쪽) 반면, 폭력적인 수단으로 사회를 바꾸려는 젊은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정치적 관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대해 저자 벨로스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것은 화해에 관한 이야기다. 계급 간 화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으며 상충하는 흐름들 간의 화해다. 결국 이것은 선이 악을 이긴다는 낙관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선하게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다.”(27쪽)


3. 대중화 과정에서 생긴 갖가지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다

『레 미제라블』은 할리우드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일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고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보고다. 저자는 이런 대중화와 각색, 축약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과 위고의 의도를 오해해서 갖가지 오류가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위고는 팡틴의 타락을 “그 가엾은 여자는 거리로 나갔다”라는 몇 마디로 처리한다. 구체적인 묘사를 피한 것은 1823년 수비병이 주둔하는 도시에서 ‘거리로 나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의 상상에 맡겼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 제작자와 화가, 각본가, 팬픽션 작가들은 19세기 성매매에 대한 다소 상세한 묘사를 통해 매춘부 팡틴의 타락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한다.(55쪽)

『레 미제라블』은 자본주의와 공장 노동을 비판하지 않고,(55쪽) ‘임금노동’을 가난의 원인은커녕 하늘이 내린 해결책으로 표현한다. 팡틴에게 유일한 물질적, 도덕적 안식의 원천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에 있는 마들렌의 공장에서 구슬을 포장하는 일이다. 위고가 말하고자 한 바는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은 그저 충분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브릴과 쇤베르크가 작사, 작곡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갤리선 노역형에 처한 장 발장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에 갤리선을 뜻하는 갈레르와 갤리선 노예를 가리키는 갈레리앵(63~64쪽)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실제 갤리선 노역형은 1748년 철폐되고, 장 발장이 감옥에 간 1796년 무렵 툴롱에서 갤리선 노역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위고가 소설을 쓸 당시 갈레르와 갈레리앵은 관용적으로 감옥과 수감자를 가리키는 말로 이용되었다.

위고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어떤 종교나 사교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가톨릭 교인도 아니었으며, 『레 미제라블』을 교회 안으로 가져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미리엘 주교는 사제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기보다 의인, 즉 공정한 사람이 어떻게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불공정을 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보아야 한다. 영화감독들은 위고가 일부러 생략하려 한 부분을 돌려놓은 경우가 많다. 1935년 만들어진 볼레슬랍스키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마일스톤은 장 발장이 성모마리아에게 회개하는 장면을 넣었고, 2012년 개봉한 후퍼의 뮤지컬 영화에서도 윈체스터 대성당에서 촬영한 장면을 넣었다. 이는 위고가 일부러 피한 관념을 끌어온 것이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는 자베르와 장 발장을 각각 의무와 양심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둘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묘사해왔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자베르가 장 발장과 대립하는 것은 의무에 대한 충실함이라기보다(의무라는 가치를 판단 근거로 삼은 이는 오히려 장 발장이다) 인간성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 때문이다. 자베르의 좁은 시야에서 보면 사회에는 잘사는 사람(부르주아)과 잘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임무는 이 두 계급이 양립하지 못하게 떼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자베르는 망나니지만 부르주아기 때문에 바마타부아는 옳고, 매춘부기 때문에 팡틴은 옳지 않다고 여긴다. 바로 이것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도 도덕적 진보가 가능함을 보여준 장 발장과 자베르가 대립되는 지점이다.


4. 19세기 스타일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레 미제라블』 깊이 읽기

뛰어난 프랑스어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는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계급별 언어의 차이 등을 완벽하게 분석해 위고가 그리고자 한 19세기 프랑스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일례로 장 발장은 19세기 소설 주인공 가운데 가장 과묵한 인물이다. 위고가 그의 입을 굳게 닫아 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등장인물의 정체성은 그가 말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농장 노동자가 성공한 기업가나 존경받는 도시 시장처럼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장 발장의 프랑스어 발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출신 계급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또 저자는 이름에 계급과 성격을 부여한 위고의 의도도 정확히 전달한다. 악당 테나르디에의 두 번째 음절 ard는 경멸의 의미를 가진다. 첫 음절은 어디서 왔을까? 촌충을 뜻하는 테냐(taenia)다. 장 발장의 경우, 그의 아버지는 “어이, 장”을 뜻하는 ‘부알라 장(Voila Jean)’의 축약형 ‘블라 장’으로 불릴 때가 많았다. 이 단어들의 조합으로 장 발장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이봐, 너”라는 이름이다.
저자는 거대한 정치 흐름, 역사 변동뿐 아니라 19세기 스타일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레 미제라블』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당대의 촘촘한 사회문화상을 드러낸다. 특히 [숨은 이야기 찾기]라는 코너를 삽입해서 일반 독자들이 알기 어려운 역사의 디테일을 설명하면서 『레 미제라블』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본문 100~115쪽 참조).

색깔. 『레 미제라블』은 화학염료가 발전한 시기 이전에 쓰인 소설이다. 저자는 1865년 이전 프랑스에서 쓰인 소설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색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흰색’은 1789년 이전 프랑스 왕정 시대 깃발 바탕색이다. 따라서 왕정주의의 대의에 관한 것에 쓰인다. ‘황색’은 가난이나 수치와 연관된다. 장 발장이 석방될 때 발부된 통행증에 사용된 색이 황색이다. ‘적색’은 1862년 전까지 ‘굴종’을 뜻하는 색이었다. 툴롱의 감옥에서 장 발장이 ‘붉은 작업복’을 입어야 했는데, 이는 굴욕을 뜻한다. 한편 전투에서 붉은 깃발은 ‘절대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2년 6월 혁명 때는 실제로 붉은색, 황금색, 검정색이 섞인 휘장이 등장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달리 위고는 앙졸라가 이끄는 학생 단체가 붉은 기를 들어올려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뜻과 공화정을 위해 싸우겠다는 뜻’을 전한다.

동전.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돈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복잡했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5프랑, 100수, 5리브르, 1에큐, 1루이는 모두 같은 금액을 가리킨다. ‘수’는 하류층 언어, ‘리브르’와 ‘에큐’는 상류층 언어라는 점이 다르다. 돈을 부르는 방식은 그 사람이 속한 계급과 거래의 종류를 반영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했다. 이를 테면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 질노르망이 딸에게 마리우스가 굶주림을 해결하도록 60피스톨을 보내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피스톨은 당시 거의 통용되지 않던 스페인 동전이다. 질노르망이 이 단어를 쓴 것은 자신은 혁명이나 제국, 엉터리 신식 10진법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마차. 1815년부터 1835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레 미제라블』은 증기기관이 없는 세상을 묘사한다. 당시 운송 수단은 오늘날의 자동차와 버스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부와 지위를 나타냈다. 사륜마차인 카로슈-칼로슈, 이륜마차인 틸뷔리, 삯마차 피아크르는 서민들이 감당할 준은 아니었다. 가난한 서민은 말을 탈 수도 없어서 주로 걸어 다녔다. 미리엘 주교가 산간 교구에 갈 때 당나귀를 이용하지만 말은 타지 않은 것은 신자들에게 연대감을 보여 주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5. 19세기 출판업의 역학에 관한 살아 있는 보고서

저자는 19세기 유럽의 저작권법과 인쇄, 출판업의 현황과 기술 수준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레 미제라블』의 출판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로 살려낸다. 번역권 포함 12년 독점 출판권에 인세 30만 프랑. 『레 미제라블』은 오늘날 금값으로 치면 370만 달러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사상 최대의 출판 계약을 맺은 작품이다. 당시에는 프랑스어가 200년 동안 유럽에서 거의 보편적인 언어였기에 라이프치히, 암스테르담, 에든버러 등지에서 프랑스어로 된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있었지만, 지적재산권법이 국내법이었기에 원저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았고, 게다가 해적판이 횡행했다. 마침 『레 미제라블』이 출간(1862년)되기 전 1852년에 프랑스와 벨기에 간 국제 저작권 조약이 처음 체결되었고 프랑스어로 쓰인 책의 해적판 거래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반체제 인사인 위고의 처지에서 볼 때 프랑스에서 출간할 경우 새 책이 출판 금지되거나 출판이 허용되어도 압수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 때문에 벨기에는 『레 미제라블』을 출간할 최적의 장소였다. 더구나 벨기에가 주권 국가이기에 프랑스의 검열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저자는 교정쇄가 건지섬과 브뤼셀을 오가는 이야기와 피 말리는 마감 전쟁을 소설적 긴장이 넘치는 서술로 써내려갈 뿐 아니라 19세기 인쇄 기술의 현황 등을 통해 당시 출판업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건지섬에서 집필을 하는 위고가 브뤼셀과 소통하는 수단이 1주일에 세 번 운항하는 우편선밖에 없었기에 마감은 전쟁과 같았다. 『레 미제라블』이 몇 달만 늦게 나왔어도 전보를 이용할 수 있었을 테고, 몇 년 늦게 나왔더라면 타자기로 문서 수발을 대신할 수 있을 터였다.
저자가 재구성한 출간 과정은 더 극적이다. 해적판의 등장으로 파리의 초판 발행일을 4월 7일에서 4월 4일로 앞당기는데, 1부 초판 6000부가 출간 이틀 만에 다 팔린다. 5월에 2부 ‘코제트’와 3부 ‘마리우스’가 발간될 당시 책방 앞에는 동이 트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고, 마차, 손수레, 승합차 등 책을 실을 온갖 수단들이 빽빽이 들어찬 거리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341쪽) 등 출간과 판매 과정에서 수많은 화제를 뿌렸다.
그 밖에도 보도 유예(엠바고)하에서 신문 광고를 게재한 혁신적인 홍보(330쪽), 독자들에게는 열렬한 반응을 얻었지만 우파 신문에서 혹평을 받았고, 민주적인 언론에서도 맥 빠진 반응을 얻는 등 평단과 동료 문인들의 냉대에 대한 이야기 등이 또 다른 흥미와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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