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해도 괜찮아
단지, 산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저자 장재용은 평범한 월급쟁이다. 매일 밥이냐 꿈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항상 약간의 피곤함이 어깨에 얹혀 있으며, 넘어질세라, 뒤처질세라 바짝 긴장하며 살아가는 월급쟁이. 좀 더 보태자면 2010년의 그는 몇 년 전의 사고로 발목뼈를 크게 다쳐 수술 후 재활 중이었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를 둔 초보 아빠인 데다, 밥 먹듯 하는 야근에 끽소리 못하는 볼품없는 신참 과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러진 발목으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국내 아흔아홉 번째로 등정한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딴짓의 이력이 새겨지게 되었을까.
등산 인구 1800만 명 시대. 점차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비둘기장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모두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산 냄새가 난다. 저자는 대학 때부터 산악 동아리에서 잔뼈가 굵은 ‘산재이’였고, 눈 덮인 흰 산 에베레스트에 오르겠다는 꿈을 가진 악우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대기업 기획부서의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낙상 사고로 에베레스트를 향한 꿈은 좌절됐다. 설상가상으로 입사 후 3년, 그는 첫 진급 심사에서 누락된다. 삶은 그를 더 이상 떨리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에서 시작하듯, 그는 앞으로의 10년을 그리며 입 속으로 오물거리던 꿈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한다. 마침 그 무렵 몸담고 있던 산악회에서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결정한다.
고소 등반에서는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의욕만 앞서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두 달여간의 시간이 필요한 등반 일정으로 인한 회사와의 갈등, 가족의 걱정과 육아 문제, 온전치 않은 발목. 저자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시때때로 울컥 솟아오르는 가슴속 불덩이를 감지한다. 아마추어 산악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수많은 생존의 문제들은 그를 계속 짓누르고, 그는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짜릿한 삶의 맛을, 그 영원할 수 없는 유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
나도 닿지 못한 나의 오지에 이르고 싶었다.”
그는 결국 에베레스트에 오르리라 마음먹는다. 혹독한 훈련이 뒤따르고, 회사에는 자신의 꿈을 설명하며 사표를 준비한다. ‘지금’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으므로. 그런 그를 아내는 가만히 보듬어주며 지지를 보냈고, 에베레스트보다 더 큰 아내의 마음 덕에 그는 가까스로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우리의 삶은 시시포스처럼 먹고사는 일(바위)을 높은 산 위로 밀어 올리며 하루를 견뎌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운명을 알면서 그것을 지속/실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월급쟁이인 저자가 말하듯 그것은 “‘생산적 노예와 비생산적 자유’ 사이의 고통스러운 줄타기”다. 다만 그는 산으로 가고 싶었을 뿐, 우리에게도 그 “짜릿한 삶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여기에 펼쳐져 있다. 비록 딴짓을 통해 그 맛에 이르기 위한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등정: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셰르파(sherpa)들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이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는 상행 카라반이 시작된다. 메마른 공기에 입 안이 갈라지고 고소 증세가 일어난다. 입맛과 식욕까지 사라진다. 마음은 오르기를 바라지만 몸은 내려가기를 바란다. 이방인을 맞는 에베레스트의 인사는 이처럼 살갑지만은 않다.
네팔에서 에베레스트를 부르는 이름은 ‘사가르마타(대지의 여신)’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 저자는 등반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다른 한국 팀의 산악인 두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를 접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짓누른다. 유서처럼, 가족에게 엽서를 쓴다.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 그리고 로부체, 촐라체가 병풍같이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이와 함께 고소증도 더욱 악화된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기 힘들어진다. 이제껏 확신했던 모든 것들이 이곳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쉬이 포기할 수는 없다. 저자가 도전했던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는 총 네 개의 캠프(캠프1~4)가 있다. 여기서 고소 적응을 위해 캠프1을 올랐다가 베이스캠프로 하산하고, 다시 캠프2와 캠프3을 오르내린다. 이를 거의 한 달여간 반복한다. 이후 고소 적응이 끝나면 체력을 보충해 정상까지 단번에 오른다. 이렇듯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력한 끝에, 드디어 출정의 날이 밝는다.
캠프3과 캠프4 중간 지점의 바위 지대인 ‘옐로밴드’는 경사가 급하고 바위와 눈이 혼합되어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 설맹 초기 단계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화이트아웃으로 주변이 모두 하얗게 보인다. 수술한 왼쪽 발목의 상태도 급격히 나빠진다. 기온은 영하 40~50도. 텐트 안에서도 몸이 떨린다. 날씨가 맑다는 정보가 퍼지자 원정대장은 정상 공격을 명령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오를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에베레스트의 밤은 적막하다. 오직 장비가 부딪치는 금속성이 고요 속에 낭자하다. 끝이 없는 수직의 설벽을 오른다. 마침내 2010년 5월 17일 오전 10시 50분,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저자는 당시의 순간을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알록달록한 깃발들이 꽂힌 정상 아래로 산들의 바다가 펼쳐진다. 가족의 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밝게 웃고 있는 그네들을 사랑하기 위한 불씨가 영원히 살아 있기를 바랐다.
※ 상세한 등정기는 특별 수록된 부록(「에베레스트, 66일간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정해진 영웅 신화가 아닌, 나의 신화를 만들기
산은 우리를 빈손으로 내려보내지 않는다. 저자는 히말라야가 전해준 일곱 가지의 선물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둘러 갈 것. 질러간다 해서 정상에 이르는 길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둘째, 첨단을 향할 것. 닿을 수 없지만 내 삶을 떨리게 만드는 삶의 북극성 하나를 상정하는 일은 우리의 지루한 삶을 중단시킨다.
셋째, 한 걸음, 또 한 걸음.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를 뚫고 한 걸음이 이어져 정상에 닿는다.
넷째, 봉우리는 잊을 것. 오직 더 오를 곳 없는 사람만이 과거의 빛나던 순간을 회상한다.
다섯째, 멀리 본 것을 기억할 것. 높이 올라가 넓은 시야로 본 것은 초라한 지금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여섯째, 오르기 위해 내려갈 것. 인생에 겨울은 반드시 온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일곱째, 같이 오를 것. 마지막 캠프에 남아 기다리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나머지 원정대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진정 함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 일곱 가지 선물이 비단 산을 오르내리는 일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저자는 개인이 가진 모든 ‘꿈의 질문’에는 사실 정해진 답이 없다고 말한다. “없는 답을 찾느라 해매고 탈진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어야 한다”고. 수많은 영웅 신화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교훈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물음에 갇혀 정해진 답을 찾아가서는 안 된다. 진정 필요한 것은 나의 질문, 즉 나의 신화를 만드는 일이다. “별은 자신을 태워 나오는 빛으로만 반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