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나이가 어딨어?
〈꽃청춘〉보다 더 생생하고〈꽃할배〉보다 더 리얼한
꽃노년 배낭족의 좌충우돌 여행기
수차례 시리즈가 이어진 인기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부터 얼마 전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까지, 노인과 그들의 삶을 다룬 콘텐츠가 우리 생활에 제법 깊숙이 들어왔음에도 노년의 삶은 우리에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이미 10년 전부터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주요 미디어에서는 청춘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사랑과 여행 같은 소재를 노인들의 삶에 녹여내며 ‘마흔 같은 예순’이니 ‘60대는 청춘’이니 하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냈지만 그간의 오랜 인식과 편견 때문인지 여전히 그들의 삶과 여가는 좀처럼 머릿속에 그리기 힘든,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보내야 할 노후는 상상 이상으로 길어졌음에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은 탓이다. 이와 더불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는 예순의 나이를 넘긴 노인들이 여행 중 겪은 대담하고 독특한 체험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흔여섯의 나이에도 여행작가, 여행가이드, 강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힐러리 브래트가 창립한 영국의 브래트 출판사와 고령 여행자들을 위한 웹사이트 실버 트래블 어드바이저가 공동 주최한 여행기 공모전 수상작들을 엮은 것으로, 전문 여행작가의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에서 벗어나 늙어가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신체적·정신적 도전에 나선 평범한 노인들이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 직장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은퇴한 후 연금 생활자로 돌아간 이들의 개성 넘치는 여행기에는 스릴 넘치는 모험,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성찰, 배꼽을 잡을 정도로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담이 두루 들어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조용히 뒷방으로 물러나 재미없는 노인이 되기를 거부한 이들의 억누를 수 없는 모험 욕구에 대한 찬양이다.
‘노인들의 여행’ 하면 흔히들 정적이고 수동적인 여행, 이를테면 패키지 투어처럼 정해진 일정에 따라 깃발을 든 가이드를 졸졸 쫓아다니는 여행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은 그와는 정반대다. 나이 듦으로 몸은 느려졌을지언정 모험심은 전성기 못지않은,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이들의 생생한 체험담이 이어진다. 난도는 현저하게 낮아졌을지언정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위험한 상황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하며, 평생 해 본 적 없는 독특한 일에 도전하며, 자신을 넘어서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찰나의 행복에 감사함을 느낀다. 환갑을 기념해 프랑스의 칼레에서 일본을 지나 영국의 컴브리아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고, 50년 전 자신이 교사로 근무했던 시에라리온의 학교를 찾아 과거여행을 떠난 남성도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매와 함께 날아보기 위해 산 위에서 몸을 던져 뛰어내린 여성도 있고, 야생 회색곰을 관찰하기 위해 집에서 6,500킬로미터나 떨어진 북극권 한계선으로 날아간 남성도 있다. 가끔은 황당하기까지 한 이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그들 역시 모험과 여행 욕구가 젊은이들만큼이나, 아니 그들보다 더 왕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편견과 싸우고 주변의 시선에 도전하며
배낭을 메고 용감하게 떠나다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예순셋이요.” 나는 격려하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예순셋이라고요?” 그녀는 감동한 목소리로 되묻더니, 숭배하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 정말 대단하세요!” (33쪽)
‘일흔여덟 살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영하의 날씨에 집에서 6,500킬로미터 떨어진 북극권 강가에 앉아서, 무시무시하기로 악명 높은 최상위 포식자인 회색곰이 발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쩝쩝대며 서 있는 걸 지켜보고 있다니!’ (81쪽)
이제 7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분명 이보다 더 점잖은 취미를 즐기고 있어야 마땅했다. 한가로운 여름날 평화로운 정원의 안락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찻잔을, 다른 손에는 좋은 책 한 권을 든 채로 깜빡 오후의 낮잠에 빠졌다 깨어난다든지. 하지만 그 대신, 나는 무척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기분을 느끼며 광대한 아프리카 한구석에 서 있었다. (87쪽)
인생의 전성기를 훌쩍 넘긴 그들에게 무엇보다 도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이를 둘러싼 자신과 타인의 시선이다. 이 정도 나이라면 이제 그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조용히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편견 말이다. 벽안의 외국인들조차 이런 시선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노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국적과 세대를 불문한 듯하다. 이처럼 백발성성한 자신을 향한 다른 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또 ‘내 몸이 이런데…’ 하는 자조 어린 걱정에 이따금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러나 책 속의 노인 여행자들은 이런 편견과 시선에 끊임없이 부딪치면서도 체면을 위해 점잔을 빼거나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이는 모험에 방해가 될 수 없다’고, “노인 요양원의 흔들의자에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보다는 케냐 초원에서 단번에 죽음을 맞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면서 담대하게 집을 나서 불편한 여행을 감행한다. 책의 기획자이자 대표 저자인 힐러리 브래트가 서문에서 “삶이 끝을 향해 갈수록, 점잖은 사람이 되고픈 욕망은 점점 강해진다. 우리는 최후까지 이 욕망에 저항해야 한다”는 《타임스》의 문장을 인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들의 여행에는 또한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과 연륜, 어린 세대를 향한 따스한 시선도 엿보인다.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한 만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감정의 동요가 없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작은 일에도 큰 행복을 느낀다. 대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눈물을 글썽이는가 하면 현지인이 건넨 작은 호의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타지에서 맺은 인연을 죽는 날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더해져 더 큰 감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지각색의 체험담을 보고 있으면 나이가 든다는 것, 병이 내 몸의 일부가 되고 갖가지 약을 달고 산다는 것,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점차 가까워진다는 것 등 누구나 마주하게 될 노년의 삶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
나이는 모험에 방해가 될 수 없다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는 나이 들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유쾌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청년기만큼 반짝이지도, 에너지가 넘치지도 않지만 ‘점잖아지고픈 욕망’ 대신 도전과 모험을 선택한, 그리하여 삶의 마지막까지 꿈꾸는 존재가 되기를 택한 이들의 여행기에는 나이든 이들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행복에 대한 성찰,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청사진이 모두 담겨 있다. 이 노인들의 여행기가 다른 세대의 독자들에게도 두루 울림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삶의 방식은 다양해지고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60, 70대는 더 이상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무성한 백발에 주름 가득한 노인이 아니다. 노년기의 시작을 의미했던 60대 역시 그 경계가 한참 뒤로 밀린 지 오래다. 지금의 20, 30대가 마주할 노년 역시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제 노년은 죽음을 기다리며 조용히 삶을 정리하는 기간이 아닌, 그간 삶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일 수 있다. 해외여행 중 나이에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노인 여행자들을 한 번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적 있다면, ‘나도 저렇게 나이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의 노화보다 마음의 노화가 걱정이었던 이들이라면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를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같은 연금 생활자들은 많은 젊은이들이 좀처럼 믿지 못할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최고의 시간은 바로 노년기라는 것이다.
노년기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시간 여유와 (운이 좋다면) 건강,
두 가지를 다 갖게 되는 때이니 말이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 순간을 즐기자!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