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인 프렌치
미국 여자, 프랑스 남자의
두 언어 로맨스
솔직한 미국 여자, 예민한 프랑스 남자의
복잡하고 미묘한 소통과 불통의 로맨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만 가지 모국어와 외국어 이야기
직설적이고 소탈한 미국 여자 로런이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프랑스 남자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 둘은 영어로 소통했지만,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제네바에 살게 되면서, 그리고 올리비에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로런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때부터 그는 외국어 습득이라는 험난한 길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치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의 관심은 영어(사용자)와 프랑스어(사용자)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머무르지 않고, 낯선 언어로 뜻을 나누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인생에서 외국어란 어떤 존재이자 무슨 의미인지까지 탐구를 확장해나간다.
이 독특한 에세이는 언어가 다른 커플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이해와 오해, 일과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소통과 불통의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모국어와 외국어, 통역과 번역, 토착어와 외래어, 단일 언어와 이중 언어, 제2외국어, 제3외국어 등에 관한 수많은 역사적·문화적·이론적 담론들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뉴요커》 소속 작가인 저자 로런 콜린스의 위트 넘치는 문체와 능수능란한 글솜씨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글을 이끌어나간다. 《더 타임스》에서 주목할 만한 100권의 책에 선정되기도 한 이 책 《러브 인 프렌치》는 공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국제 커플의 연애담에 깊이 있는 언어 이야기들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언어학적 로맨틱 코미디’이다.
깊이 있고 아름답게 쓰인, 언어와 친밀함의 기술에 관한 고찰. 《뉴욕 타임스》
프랑스어 사용자와 결혼하면서, 그 언어를 백지상태에서 배워가는 과정에 지성과 유머와 호기심이 넘쳐흐른다. 《가디언》
영리한 구성, 좋은 글솜씨. 저자는 몸 사리지 않고 솔직하게, 유머를 담아 자신의 걱정과 실수를 드러낸다. 모든 챕터에 유쾌한 구절들로 가득하다. 《커커스》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어떻게 우리를 형성하는지에 관한 똑똑한 에세이. 《퍼블리셔스 위클리》
소리 내서 웃을 만큼 웃기면서도 신랄한 시행착오 이야기와 대중적인 언어학 개론이 잘 짜여 있다. 《디파처스》
본문 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커플은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올리비에와 내가 지닌 차이점들은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서로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은연중에 상대를 덜 신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올리비에는 쩨쩨하다 싶을 만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아꼈다. 반면 나는 불치병에 걸린 독재자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지나고 나면 내가 말할 때의 기분과 말투만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올리비에는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을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복사하듯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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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목소리에는 감정이 약간 실렸다. 올리비에는 무언가 다른 뜻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들이 정확히 무슨 요일에 오는지 알고 싶을 뿐임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났다.
올리비에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게 무슨 말이야? 아까 내가 말한 그대로라고.”
“그래? 당신이 뭐라고 말했는데?”
“이미 말했잖아.”
“뭐랬냐고?”
올리비에가 잠시 침묵한 끝에 입을 열었다.
“너와 영어로 말하다보면 마치 장갑 낀 손으로 네 몸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잔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는 슬픔이 조금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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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칫 경계가 삐끗해지면 로맨스가 싹틀 잠재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외국어를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어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상대가 이질적일수록 매혹은 더 커지고, 에로틱한 생각이 상대를 향한 ‘숭고한 갈구’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언어의 환유가 귀나 눈,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엄지가 아닌 혀인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혀를 받아들이려는, 그래서 입안에 다른 이의 단어들을 채우려는 의지는 유혹을 마다 않는 유연성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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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의문은 올리비에와 나 말고 다른 커플들도 언어의 교착 상태에 빠질 때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서로 상반된 언어 체계다. 전자는 세계적이고 편리하며 비교적 격식에서 자유로운 반면, 후자는 특수하고 계층적 구조를 띠며 배우기가 어렵다. 프랑스어가 내 인간관계의 틀을 다시 잡아주어서 확실히 친하지 않다는 점이 판명될 때까지, 모든 이들을 무조건 친근하게 여기는 나의 타고난 성향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내 부모와 친구들, 동료들은 물론이고 멕시코 식당에서 내게 과카몰레를 공짜로 더 준 여종업원, 수국, 인터넷 팟캐스트, 깨끗한 침대보까지 모두 ‘사랑’한다. 올리비에도 그저 나를 계속 ‘사랑’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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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접한 언어가 감정의 저수지라면, 두번째로 습득한 언어는 댐으로 막지 않은 강에 비유할 수 있다. 부모형제와 함께 있을 때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남편이나 자녀와 대화할 때는 프랑스어를 쓰는 한 스위스 친구는 영어로 말할 때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고 내게 말했다. 그 순간만은 누나도 엄마도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리 위의 한 사람을 밀어 떨어뜨리면 열차에 치이기 직전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같은 딜레마를 모어가 아닌 제2 언어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한 명을 희생시키는 쪽을 택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해방적 분리 효과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