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선택받은 소수만 누리는 경제 성장의 맛
세상은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오로지 선택된 소수만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절제와 자립을 이상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경제사상에 가장 반대되는 모델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추구해온 '수출 주도형 정치경제'일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수출과 고도성장이라는 것을 위해 희생시키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고도의 인간성 완성을 목표로 해야 할 교육제도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을 세워서 일 시킬 사람과 일할 사람을 나누는 모욕적인 제도가 되지 않았는가? 윤리적 가치와 인간 존중의 마음씨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그러한 가치를 밝히고 고민해야 할 학문과 문화는 돈벌이와 자랑의 수단으로 타락하지 않았는가? 누구나 즐겨 입에 담는 우리 사회의 천민성이라는 것은 그 한국형 수출 주도 정치경제의 귀결이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경제적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미래의 전망 역시 불확실한 것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바로, 아주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지금은 경제학의 재정립을 위해 철학적 지혜에 귀 기울여야 할 때
경제와 경제사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펼쳐온 여태까지의 논의와는 달리, 이 책은 철학적··사상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 주목된다. 본문은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경제적 패러다임이 바람직한 것도, 미래의 전망 역시 확실한 것도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과는 다른 미국, 그 외 여타 선진국들의 경우만을 좇자는, 우리 풍토에 대한 관심과 소양이 부족한 학계에 대한 우려와 비판 역시 이 책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우리를 천천히 질식시키며 암흑 상태로 몰아넣었던 지난 경제 위기를 생각해볼 때, 그 암흑이 걷히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저자 개인의 책임감도 일조한다. 경제 위기란 바로 삶에 대한 허무, 인생의 방향 상실까지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은 더 간절해진다. 저자는 현대 경제의 위기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사상을 제안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여러 학문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질문과 틀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몇 천 년 동안 경제사상사에 나타난 수많은 생각과 주장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는 게 그 이유이다.
다시 짚어보는 ‘경제’의 정의, ‘왜 루빈슨 크루소가 세상을 장악했을까’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마르크스나 케인스, 폴라니 등 내로라하는 현대 경제사상가들의 면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례로부터 멀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도 이 책의 성과 중 하나이다. 우선 저자는 이른바 '과학적'임을 표방하는 현대의 상식에 대해 그 근본 전제부터 다시 되짚어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1장과 2장]에서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시켜 반성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경제'라는 말 자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경제'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이러한 정의가 어떤 문제점들을 내포하는가를 검토한다. 이어 그 말이 생겨나고 변천되어온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며, 오늘날 '경제'라는 말이 가진 현대적인 상식이 자명한 공리,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상을 비판한다.
[제3장과 4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경제사상을 다룬다. 그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는 어떤 사회였는지, 당시 시대적 사상적 도전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 경제사상의 구체적인 의미와 의도를 찾아본다. 이를 위해 '시장경제, 민주주의, 폴리스'를 핵심어로 제시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제5장과 6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경제사상의 흐름을 논의한다. 그의 경제사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로빈슨 크루소'로 상징되는 개인주의가 현대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먼저 검토한 후, 이 와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디어와 사고방식들이 마르크스나 폴라니, 케인스 등의 현대 사상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발전되어왔는지를 검토한다.
이 같은 논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수동적 패배주의, 허무주의, 냉소주의 등 경제 논리가 우위로 작동하는 현대의 폐해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경제사상, 더 나아가 폴리스라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현대적 복원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다. 또한, 그 현대적 복원을 논의하거나 거슬러갔던 여러 경제사상가들의 면면을 일별하여, 경제학에 대한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것도 이 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이 윤리적 가치와 인간성 복원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는 점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경제, 경제행위란 불평등, 소외, 파괴를 목적으로 한 인간의 무분별한 소통 행위는 아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