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규제 정책은
어째서 계속 시행되는가?
프랑스 대혁명에서, 급진파인 자코뱅당의 리더로 정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수많은 실험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다 결국 실패해 단두대에 올라 최후를 맞았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단두대에까지 오르게 된 데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원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저자는 여기에 대담한 가설을 하나 더 추가한다. 바로 우유 가격에 대한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혁명기의 어수선함 속에 우유 값이 올라 국민들이 어려워한다 → 정부가 우유 값을 지정해 그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한다 → 시장에서 우유가 사라지고, 암시장에서 비싸게 유통되어 역시 국민이 어려워한다 → 원인을 조사하니, 사료 값 인상분을 반영하려다보니 정부가 정한 가격에는 맞출 수가 없었다 → 그래, 괘씸하군! 정부가 사료 값을 일률적으로 지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한다 → 그러자 아무도 사료를 만들어 팔려고 하지 않는다 → 사료가 귀해지자 배고픈 젖소는 우유를 내지 못한다 → 암시장에서도 우유가 귀해지고, 가격은 계속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우유만이 아니라 우유를 사용하는 빵과 치즈의 가격도 폭등한다 → 견디지 못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은 항상 국민을 앞세우고 국민의 삶을 걱정했다. 역사가 중 누구도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로 우유 값을 안정시켜 누구나 싼 가격에 우유를 사먹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단두대라는 결말을 맞았다. 선의로,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들이 나쁜 결과로 끝난 사례는 의외로 꽤 많다. 베네수엘라의 ‘마진 30% 룰’은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의 오류를 수백 년 후에 똑같이 답습한다. 정책이란 게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말만 그럴듯한 정책들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무책임하게 툭툭 던져지고, 때로는 선의를 방패삼아 실패를 정당화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좋은 의도에서 시행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둘 쌓인 그런 정책이 결국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국민들이 나라를 버리게 만든다. 역사상 결코 적지 않은 국가의 정부가 부패와 실정이 아니라 ‘자칭 실수’가 빚어낸 빵 한조각의 문제 때문에 물러났다.
《규제의 역설》은 이런 역사와 현실을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규제의 세목과 그 이면들을 살핀다. 수백 년 역사를 넘나들며, 미국, 영국, 프랑스부터 루마니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세계 각지의 엉뚱하고 황당한 규제 정책들을 다룬다. ‘하룻밤에 읽는 규제의 역사’라 할 정도로 사례들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다.
‘규제’ 정책이 아니라
‘규제의 역설’ 정책이 문제다
하지만 규제 정책은 무조건 부정적이기만 할까? 물론 정부의 역할 중 규제 정책의 지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제 정책 중에서도 실패가 예견된 정책이 존재하며, 저자는 이를 ‘규제의 역설’ 정책이라 부른다. 이런 정책은 당사자들에게는 답답한 장벽, 혹은 고통의 원천이 되며, 더 나아가 국가 자체의 기반을 붕괴시킨다.
대표적인 예시가 주택 정책이다. 어느 나라나 주택 정책은 정부의 거시 정책 중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루마니아는 1가구 1주택을 실현했다. 꿈의 정책이라고? 그 정책의 결과 루마니아의 주택 산업은 거의 붕괴 상태에 몰렸고, 주택 산업과 연동해서 발전할 수 있었을 많은 영역들이 그냥 공백으로 남아버렸다. 도시 간, 혹은 도시와 지역 간 이동이 그저 형식적인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주거 이동도 제한되었다. 리비아의 주택 정책은 더욱 극단적이다. 지금은 실각해 처형된 카다피의 주택 정책은, 누구든 빈 집이 있으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황당하지만, 기회의 평등은 보장될 것 같은가? 결국 여유가 있어서 따로 집을 지키는 사람을 남겨둘 수 있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정책이었다. 기회는 균등해 보이지만, 여기에도 부자가 가진 유리함은 계속되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원하는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기조 하에 ‘닌자 론’을 실시했다. 그러자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에서도 논의되는 부유세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의 예시 역시 흥미롭다. 저자는 우리보다 먼저 그런 정책을 시행한 서구 선진국의 사례를 추적한다. 부유세는 정말 서구 선진국에서 보편타당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그리고 실제 효과는 어떨까?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는 부유세로 거둘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 해외로 흘러나갔다. 부유세를 내는 대신, 부자와 자본가들은 스웨덴을 떠났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때 세계 최초로 적용되었다. 이때 성립한 공화국 정부의 성과다. 정책은 재봉사, 의류 노동자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었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보상이 사라지자 노동의 열정도 사라졌다. 대가에 따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는 극소수였다.
‘오기’로 시작한 정책은 ‘예정대로’ 실패한다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사례 중에서도, 저자가 특히 집중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보호, 장애 등급제 폐지 등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여러 복지 우선의 규제와 그를 둘러싼 논쟁들을 꼼꼼히 살폈다. 저자에 따르면 최저임금제는 노동자 전체로 보면 소득을 감소시켰고, 비정규직 보호법은 실업자를 늘렸다. 대학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안정성을 높이겠다고 나온 대학 강사법은 많은 강사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으로 이어졌다. 정책의 시작은 선의에서였지만, 결과는 결코 그에 부합하지 못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규제의 역설’이라는 말이다. 그냥 규제가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중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규제의 역설’에 해당한다.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나쁜 결과로 이어지듯, 애초 규제가 노렸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규제는 그 규제의 효과가 어떨지 처음에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규제의 역설이 발생하는 규제에 대해서는 미리 예상할 수 있다. 규제의 역설은 단순히 부작용이 큰 규제가 아니라, 목적에 오히려 해로운 규제다. 다른 나라에서 과거에 시행했는데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전력이 있고, 그에 대해 많은 연구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규제를 하면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한다. 규제의 역설은 보통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정책이란 것은 종종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일종의 시행착오 과정으로, 지금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앞으로 개선하여 나아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규제의 역설은 위험성이 충분히 예상되었고, 실패한 사례 역시 충분히 쌓여 있는 것들이다. 실패가 예정된 것이니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시행의 위험성 역시 수시로 경고되지만, 보통은 고집으로 밀어붙이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시행된 규제 정책은 ‘예정대로’ 실패한다.
선한 의도, 좋은 명분이 좋은 결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이런 실패들이 왜 발생했는가를 꼼꼼히 따지고, 개별 정책, 개별 규제의 실패가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예견된 실패였음을 알아야 한다. 규제의 역설 현상을 보다 자세히 알고 이해하는 것은 향후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방향을 찾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규제의 역설》이 그런 모색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