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땅을 파고서 흙 속에서 기거하고 산허리의 능선에서 목마른 때에 물 한 모금 먹기 어려운 전선에 있는 우리의 용사들이, 이제 앞으로 눈이 쏟아지고, 살을 에이는 매운 바람이 산봉우리 에서부터 휩쓸어 불어 내려오면 가뜩이나 미끄러운 산비탈에서 농구화를 신고서 꽁꽁 언 발가락으로 어떻게 오르내리고 싸움을 할 것인가? 물어 보아도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은 대답이 없다.
그러나 올 것은 모든 것이 오고야 말고, 갈 것은 모든 것이 가고야 만다. 생명이 살다가 환원하는 것도 〈때〉의 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오면 해가 숨고, 시간이 오면 날이 밝는다. 이것이 〈때〉이다.
우리는 지금 때의 명령에 의해서 싸움하고 있다. 천하가, 만국이 다 같이 때를 기다린다. 천시가 지 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고 옛사람은 말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법, 싸움터에서 전쟁할 때의 장수의 처사하는 법을 가르치는 말뿐이요 근본적으로 때를 무시해서 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