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쟁이 개인과 가족에게 가져온 비극, 비어스가 자주 다룬 주제다. 「창공의 기병」에서 남북전쟁 당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아버지와 아들에게도, 「쿠드그라스」에서처럼 다행히 서로 같은 편에 소속된 형제에게조차 비극은 비켜가지 않는다. 이 단편 「앵무새」에서는 북군 소속의 그레이록 이등병과 남군 소속의 쌍둥이 형제가 등장한다. 쌍둥이라는 관계가 밝혀지면서 비어스다운 그래서 익숙한 파국과 비극이 예견된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책 속에서〉
1861년 이른 가을의 어느 유쾌한 일요일 오후. 버지니아 주 남서부 산간 지역의 숲 한복판. 북군 소속의 그레이록 이등병은 커다란 소나무 밑동에 편안히 기대앉아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허벅지에 소총을 걸쳐놓은 채, 두 손은 (양 옆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움켜잡아) 총열에 올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뒤통수가 나무에 닿아 모자가 밀려 내려가면서 두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했다. 누가 보았다면 잠이 들었다 보다 생각했을 터였다.
그레이록 이등병은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미합중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전선에서 꽤 먼 거리에 있어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심리 상태는 휴식을 달가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를 불안하게 만든 원인은 이러했다. 전날 밤, 그는 바로 이 숲에서 초계 임무 중이었다. 달이 뜨지 않았지만 밝은 밤이었다. 물론 숲 속의 어둠은 짙었다. 그레이록의 초소는 좌우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자세한 상황 보고조차 어려울 정도로 초병들이 주둔지에서 쓸데없이 멀리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반이었고, 군 진영은 이런 실수를 용인했다.
저자소개
지은이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기자와 비평가로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활동했다. 죽음과 공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냉소적인 단편소설을 썼다. 1913년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껴,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됐다. 오지나가 포위 공격 때 살해당했으리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망 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 철도 법안을 둘러싼 비리를 파헤쳐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칸 영화제 수상 단편 「아울 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텔레파시 등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괴기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삼류 괴기물로 평가절하 됐던 비어스의 작품은 1964년 그의 사후 50년 만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괴기 소설전집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부터 재조명되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