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적인 유령
공포보다는 유머러스한 유령 단편이다. 리디아 커루는 한 유서 깊은 명문가의 마지막 후손이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흐트러짐 없는 품위와 예법의 귀감으로 고결하고 인자한 삶을 살았다. 이런 그녀가 유령의 모습으로 자신이 살았던 저택에 이따금씩 나타나 거주자들을 놀래 주었다. 그녀는 요즘의 경박한 삶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보그스 자매도 원치 않는 커루의 방문을 받고 불안해진다. 바야흐로 현 주인과 옛 주인, 산자와 망자의 밀당 같기도 하고 기 싸움 같기도 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그러나 유령은 분리부정사나 이중부정처럼 문법에서 어긋나는 비문을 견디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응접실에 대해 가능한 반론은 딱 한 가지다. 커루 양이 종종 나타난다는 것이다. 커루 양에 대해 가능한 반론은 딱 한가지다.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사실과 기록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녀는 죽은 지 이십 년이 지났으며 죽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보와 전통을 경건히 지켜냈다. 그녀의 집안은―웬만한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공화국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용감한 명문가였다. 커루 양은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을 때조차 집안 특유의 후한 대접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포기하지 않은 품위 있고 훌륭한 식탁은 경박한 젊은 여성들에게 지극히 검소하고 온화한 예법의 귀감이었다.
그처럼 흠잡을 데 없이 고상한 삶을 살기란 어려울 터인데, 커루 양도 까다로운 지역 사회에 죽을 때까지 알리고 싶지 않은 악취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예절의 본보기로 꼽는 친구들을 격분시키는 일 없이 그들의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어느 6월 아침, 장미 울타리를 손보다가 그녀는 남의 이목을 끌지 않고 심장병으로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녀가 쓰러졌을 때, 라벤더 색깔의 옷자락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아담한 갈색 슬리퍼 끝에는 터럭만 한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