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 다니는 남자
〈기어 다니는 남자〉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 중 하나다. 1923년 3월 영국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같은 달 미국 히어리스츠 인터내셔널(Hearst's International)에 처음 소개되었다. 1927년 12편의 홈즈 후기 모험을 엮은 〈셜록 홈즈의 사건집〉에도 수록되었다.
어느 초가을 일요일 초저녁, 왓슨은 홈즈에게 당장 와달라는 전보를 받는다. 그곳에서 왓슨은 홈즈와 함께 켄포드의 유명한 생리학자 프레스버리 교수의 조수이자 교수의 딸과 약혼한 트레버 베넷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트레버는 홈즈에게 최근 프레스버리 교수 주변에 일어나는 기이한 문제를 털어놓는다. 60세가 넘은 교수는 일찍 상처하고 홀로 지내왔는데, 동료 교수의 딸과 재혼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말없이 2주간 여행을 다녀온 후, 교수 주변에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수를 잘 따르던 애완견이 갑자기 교수를 공격하는가 하면, 한밤중에 교수가 복도를 기어다니는 모습이 목격된다. 그의 약혼녀 에디스는 3층 침실 창문 밖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홈즈와 왓슨은 다음날 아침 켄포드로 향한다. 교수의 이상 행동 패턴을 분석해 잠복하던 그들 앞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나타난다. 놀랍게도 교수는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해 민첩하게 기어 다니고, 목줄에 묶인 자신의 개를 희롱하는 등 기괴한 행동을 보인다. 교수는 개를 도발하며 접근하다 결국 목줄이 풀린 개에게 목을 물린다.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사고였지만 왓슨의 응급처치로 교수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홈즈 일행은 교수의 물건들을 조사하며 이해할 수 없는 교수의 행동 이면에 숨은 놀라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기어 다니는 남자〉는 코난 도일이 인생 후반부에 깊은 흥미을 보인 심령과학, SF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검증 가능한 팩트와 논리를 중시하는 정통 추리 소설 매니아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로서는 최신 미래 의학 기술로 각광 받던 생리학의 양면성을 주목한 작품이다.
본업이 의사 출신인 코난 도일답게 홈즈의 활약을 통해 첨단 의학과 약물 개발, 특히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신종 약물이 마냥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