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엘라 밀러
「루엘라 밀라」는 전통적인 뱀파이어와는 다르다. 흡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희생양에게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몬스터보다는 은유적 뱀파이어에 더 가깝다. 물론 루엘라 밀러가 희생자들을 “호리는” 능력은 초자연적인 범주에 들어있긴 하다. 한 마을에서 악명과 함께 공포와 전율로 기억되는 여자, 루엘라 밀러는 자신의 주변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돌봐준 헌신적인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그들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루엘라뿐이다.
고딕 문학의 전통에서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를 이으면서 흡혈보다는 착취와 억압의 관점에서 주목도를 높인 작품이다. 사이킥 뱀파이어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다.
〈책 속에서〉
마을의 거리 인근에 ‘루엘라 밀러’라는 악명 높은 여자가 살았다는 단층집이 있었다. 그녀가 죽은 지 오래고, 아주 옛날의 위험을 통해서 이제는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더 분명해진 견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얘기를 제법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루엘라 밀러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의 격한 전율과 광적인 공포가 남아 있었다. 그 낡은 집을 지나칠 때, 젊은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고, 아이들은 빈집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처럼 그 집 주변에서는 절대 놀지 않았다. 옛 밀러의 집에는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았다. 그 창문에 에메랄드빛과 파란빛 아침 햇빛이 반사되었고, 잠겨있지 않은 현관문의 늘어진 빗장은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다. 루엘라 밀러가 죽은 뒤, 그 집과 바깥세상의 머나먼 은신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던 혈혈단신의 노파를 제외하고, 그 집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어느 친척이나 친구보다도 오래 살았던 그 노파가 그 집에 머문 것은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뒤, 아침에도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 건장한 이웃들이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침대에서 죽어있는 노파를 발견했다. 그녀의 사인에 대해 음산한 속삭임이 오갔다. 시체의 얼굴에 드러난 극심한 공포의 표정이 떠나가는 영혼이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보여준다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정정하고 다정했던 노파가 일주일 만에 죽었으니,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였다. 목사는 미신의 죄악을 은근히 힐난하며 엄숙하게 설교했다. 그러나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다. 차라리 구빈원에서 살았으면 살았지, 그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을 들은 부랑자들도 근 오십 년 동안 미신적인 공포로 얼룩진 그 집의 낡은 지붕 아래서 피난처를 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