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고 싶은 아이 아이이고 싶은 어른
아들이 앞장서고 아빠가 뒤따르는 올레길 여행
하루예산 9만원
하루 평균 이동거리 13km
잠은 게스트하우스에 자기
각자 짐은 스스로 들기
〈책 속에서〉
"여행자가 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마음가짐, 그걸로 충분했던 게 아닐까. 건욱이는 이미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건욱이를 완벽한 아이로 포장하려 한다면
건욱이는 마음껏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내려놓아라
기다려주어라
변화가 필요한 건 건욱이가 아니라 내 쪽에서였다
인내와 믿음
그리고 아마도 약간의 거리두기
우리가 각자 다른 인격체이며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주라는 진실
아이는 나의 일부가 아니며
나 역시 아이를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커간다는 진실
언젠가 우리는 서로의 벽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진실
그리니 슬퍼 말고
지금부터 존중해주어라"
"우리의 하루 예산을 8만원으로 잡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하루 경비를 감당하기에 빠듯하여
내일부터는 9만원으로 올리기로 하였다
이 돈은 매일 아침 건욱이의 지갑에 채워질 것이고
건욱이는 이 예산안에서
우리의 숙식을 포함한 하루의 여행 경비를 해결해야 한다
건욱이는 돈 관리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짐과 동시에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밥인가 놀이인가
설사 감귤로 점심을 때우더라도
해보고 싶은 것은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재산을 탕진하는 경험을 더 이른 시기에 해볼 수 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 아닐까"
"내려놓아라
나의 마음을 더 내려놓아라
나는 그저 너를 감싸는 하나의 바람이 된다
공기가 된다"
"건욱아 태어날 때 눈 가지고 있었지
코 가지고 있었지
귀 가지고 있었지
입 가지고 있었지
손 가지고 있었지
핸드폰도 가지고 있었나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의존하면
그만큼 덜 자유로워지는 거야
그래서 오늘 하루 건욱이와 나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7코스를 완주하기로 합의하였다
휴대폰의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올레길을 느껴보자며
야심차게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숨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