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군에게
이곳으로 온 뒤에는 지는 해가 뒷산 봉우리에 걸칠 때쯤 되면 한 10분 동안이나 창 귀퉁이 옆으로 큰 대접 넓이만한 햇살이 방바닥에 간신히 들여 비치네그려. 10분 동안의 햇빛이, 대접 넓이만한 햇빛이, 여보게 이 사람, 광명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도리어 상상키도 어려운 일일세.
요새도 우리 집 식구를 더러 만나 보는가? 우리 어머니는 자네가 오기 전에 면회하러 왔더라고 자네 보고도 말하였지마는, 1주일에 한 번씩은 으레히 오는 내 아내라는 사람은 내가 이 방으로 옮아오던 날 마침 왔데그려.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 늘 집안이 다 무고하다고 말하니까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나, 아마 내게는 바른말을 하지 않는 것 같네. 집안 식구가 잘 지내거나 잘못 지내거나 내가 알아도 소용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마는, 그래도 가끔가끔 걱정되는 마음이 문득 나네그려.
- 책 속에서
조명희 (趙明熙)
(1894∼1938)
시인/소설가/극작가
순회극단 동우회(同友會)에서 연극활동을 하였으며 직접 쓴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를 상연하기도 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의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땅속으로》, 《낙동강》, 《이쁜이와 용이》 등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