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돈 십 전 있던 것으로 호떡 두 개를 사 먹고 나서 오늘 밤 잘 자리를 찾아보았다. 친구네 집으로 갈까 싶었지만 내외 사는 그 단칸방에 끼어 자기는 미안쩍다. 옳다! 낮에 가 놀던 경무대로 가자. 좀 우중충할 터이지만.

경복궁 긴 담을 타고 올라간다. 지금까지 시달려 온 생활의 고통으로 이같이 담대해졌음을 느낀다. 추성문 안에 들어섰다. 이곳 저곳 어두컴컴한 구석에 무엇이 있는 듯도 싶고 없는 듯도 싶다.
"그 누구요?"
"사람이요."
저쪽에도 사람이 있는 듯싶다. 그쪽으로 가 보니 작년이나 금년이나 사철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던 그 여편네 거지다.
별안간 어디서 마루창 밟는 구두 소리가 저벅저벅하고 난다. 고개를 들어보니 난데 없는 등불이다. 그 거무스름한 형용과 등불이 저쪽 맨 처자리에 누운 아까 그 '사람이요' 하고 대답하던 거지에게로 간다.
"여보 여기서 자지 마오. 딴 데로 가요. 어서."

저자소개

조명희 (趙明熙)
(1894∼1938)
시인/소설가/극작가
순회극단 동우회(同友會)에서 연극활동을 하였으며 직접 쓴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를 상연하기도 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의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땅속으로》, 《낙동강》, 《이쁜이와 용이》 등의 작품을 남겼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