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
“평일에 여행? 역시 프리랜서라서 팔자가 좋다.”
“프리랜서면 자유롭게 살아야 하지 않아? 근데 일도 거절 못 하고 매여 살면 어떡해?”
프리랜서 번역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프리랜서라서 자유롭고 편하게 일하며 살 거라는 환상부터 프리랜서라서 불안한 삶을 살 거라는 편견까지. 어쩌다 보니 패션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정재이 작가는 “패션 번역이 도대체 뭔가? 그래서 영화나 책은 번역하지 않는다는 건가?”라는 편견 어린 질문에도 시달린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이었던 번역가가 되고자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새 출발을 했지만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정재이 작가는 번역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왜 행복한 이유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부터 찾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나간다. 프리랜서라서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더 치열하게 살면서 슬럼프나 번아웃이 오면 여행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몰려드는 번역 마감과 주변의 편견, 부족한 휴식...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온 후로,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저자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 기내에서 누르던 비행기 모드 버튼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그러던 중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에도 SNS로 수많은 사람과 초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완전하게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사한 것이다. 자발적 단절을 선택하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연결될 용기와 힘을 되찾게 된다.
이 책에는 일상을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다짐을 했던 저자가 팬데믹 직전에 한 달간 다녀온 샌프란시스코와 LA 여행을 추억하며, 지난 2년 동안 또 한 번 성장통을 겪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장 큰 삶의 즐거움인 ‘여행’을 잃어버린 프리랜서 번역가의 포스트팬데믹 분투기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여행 앨범에서 꺼내 놓은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사진 속 여행지의 소리와 냄새, 촉감까지 느껴져 지금 당장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누르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