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합천은 왜 ‘한국의 히로시마’인가, 사람들은 왜 합천을 외면하는가?
지워진 현대사의 아픔, 원폭 피해자의 고통…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잊힌 일들, 잊힌 사람들, 잊힌 고통들이 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원폭 투하로 일본은 항복했고, 조선은 해방됐다.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와 관련해 우리는 그 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해방의 기쁨에 가려진 참혹한 비극….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를 입은 조선인이 있었다. 무려 7만 명이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을 자칭하는 일본의 구호에 가려지고 말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원폭 피해자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의 고통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은 과거의 일일 뿐일까? 의아하고 섬뜩한 일이지만, 72년 전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한 우리 민족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원폭 피해의 핵심은 유전이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인 고통과 비극이 집약된 곳이 바로 경남 합천이다.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릴 정도로 원폭 피해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합천은 인류사적 맥락의 불합리와 비극이 녹아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모두들 외면하고 회피한다.
소설 『흉터의 꽃』은 일반화된 외면과 회피를 헤치고 ‘한국의 히로시마’와 일본의 히로시마를 오간다. 원폭 비극을 송곳처럼 파헤친다.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의 삶을 때론 절절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이야기 속에서 원폭의 참상과 핵 피해로 인한 고통이 서서히 드러난다. 관념에서만 존재하던 반핵과 인권의 문제가 이 소설을 통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현실 문제로 육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