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베이비
2022년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 버려진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흥망성쇠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김유원의 《불펜의 시간》 등 1996년 제정되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일곱 번째 수상작 《카지노 베이비》를 출간한다.
8인의 심사위원들은 “안정적인 서사 구조, 매력적인 캐릭터와 더불어 사람과 장소의 내력을 살뜰히 아우르는 작가의 넓고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고 평하며 총 응모작 171편 가운데 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를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카지노 베이비》는 카지노 특구에서 나고 자란 ‘전당포 아이’의 성장 소설이다. 탄광촌이었다가 카지노 마을이 된 도시 ‘지음’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흥망성쇠를 아이의 눈으로 조망한다.
심사를 맡은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아이, 너무 많은 일을 겪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 끝끝내 함구하는 할머니, 이 두 비밀 사이의 긴장에 주목”했다고 밝혔으며, 소영현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이 “동양 최대의 광업소였던 사북 지역의 흥망성쇠를 환기”하는 작품이자 “지역 개발과 관광 산업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의 이름으로 카지노 사업을 운영하고, 돈의 논리로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망가뜨린 시간의 지층을 담은 보고서”라고 평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남은 자들,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작가가 “소설 속 인물들이 품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생생하게 구현”해냄으로써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카지노 베이비》는 예고된 끝을 향해 맥없이 망해가는 세계 한가운데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이들에 집중”하며 “개발과 탐욕에 취한 우리가 지금 어떤 꼴이 되어버렸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로,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묻고 있음을 강조했다.
소설 속 ‘지음’은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탄광 인근 마을의 기억과 군 제대 후 카지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녹여 탄생시킨 공간이다. 현직 출판 편집자이기도 한 수상자 강성봉 작가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위태로운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이 압축된 지음이란 가상의 도시를 생생하고 핍진하게 묘사해냈다.
이 소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휘몰아치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쓰였습니다. 지음은 탄광 위의 도박장, 그러니까 산업화 시대의 기반 산업 위에 올라탄 투기와 유흥 산업의 기이한 구조, 침체된 상황에서도 투자 활기만은 넘쳐나던 팬데믹 당시의 사회 분위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승일로의 위태로움을 반영하는 동시에 환기하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다만 그러함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러함에도 끈질기게 제 길을 찾아 나아가는 생명력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늘이라는 아이와 더불어 지음이라는 땅입니다._‘작가의 말’에서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카지노 베이비, 세상에 서다
《카지노 베이비》는 과거 탄광촌이었다가 카지노와 리조트 단지로 바뀐 고장 ‘지음’의 풍상을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다. 지음은 과거와 현재, 토박이와 외지인들이 뒤섞인 곳으로, 랜드가 있는 지장산 기슭은 웨스트부다스, 지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읍내는 이스트지저스로 불린다. 그 사이에 모텔촌과 전당포들이 모여 있는 슬립시티가 자리한다. ‘나(동하늘)’는 아기 때부터 슬립시티의 전당포에 맡겨진 열 살 즈음의 아이다. 전당포 주인을 할머니, 그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으로 여기며 자랐다. ‘나’는 출생의 비밀을 우연한 기회로 하나둘 알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카지노 베이비’가 되었는지 정체성을 찾아간다.
3부로 구성된 소설은 ‘나’의 기억과 회상, 상상을 통해 지음과 지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부 〈전당포 가족〉은 ‘나’의 가족과 그들이 사는 도시 ‘지음’ 이야기다. 열 살이 넘은 ‘나’는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그림자 아이’다. ‘나’는 전당포 주인을 할머니, 그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으로 부르며 가족처럼 살고 있다. “랜드가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니는 삼촌,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 이 가족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은 억척스럽게 도시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금이래도 전당국에 맡길 순 없지, 로렉쓰라면 몰라도”라고 말하는 ‘동영진 여사’는 노름꾼은 노름꾼처럼 생각하고 전당포 주인은 전당포 주인의 일을 하면 된다고 ‘나’를 가르친다. ‘나’는 자신이 왜 전당포에 맡겨졌는지 궁금해하지만, 그 이유를 알려주는 어른은 주변에 없다. 그런 ‘나’에게 범바위골 박수 할아버지는 자기 안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할 뿐이다. 한편 ‘나’는 거듭 지음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을 본다. 실제로 전당포 거리의 도로엔 구멍이 뚫리고 거리에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광업소가 있던 지장산 중턱에는 카지노가 들어섰다. 산을 깎아 골프장을, 인공 눈을 뿌려 스키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리조트에서, 어른들은 카지노에서 각자의 게임을 즐겼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몰려들어 랜드의 호텔과 리조트는 미어터졌고, 기회를 놓칠세라 지음에 땅을 사뒀던 외지인들은 랜드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파트와 모텔, 싸구려 리조트를 지었다. 광부 사택과 포장마차 거리는 슬립시티와 전당포 거리로 바뀌었으며 그곳에 꿈을 저당잡힌 사람들은 지음을 이스트지저스로, 지장산을 웨스트부다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음 땅의 이름은 천천히 지워지고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라는 외침만 남게 되었다._87~88쪽
2부 〈카지노 베이비〉는 ‘나’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스피드전당포 주인 용 사장과 엄마의 전화 통화를 우연히 엿들은 것이 계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다 진실인지 혼란에 빠진다. ‘나’는 꿈에서 자꾸 보았던 카지노의 전경을 확인하고 싶어져 용 사장에게 카지노를 구경시켜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카지노를 방문한 날, 랜드에 큰 지진이 발생하며 건물이 무너진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그날 밤 이야기를 듣고 세 번 놀랐다. 첫째, 어쩌면 내 이야기일지 몰라서. 둘째, 생뚱맞게 염 목사님의 이름이 튀어나와서. 나만 빼놓고 다들 아는 걸까? 평소 할머니는 염 목사님을 “목사가 아니라 뿌로커”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나? 뿌로커가 뭐냐고 묻자 할머니는 “돈이 부르면 워디든 가고, 돈이 시키면 뭔 일이든 하는데, 그게 돈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눔들”이라고 했었다._127쪽
3부 〈할머니의 유산〉은 ‘나’가 할머니를 통해 듣게 된 가족과 지음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지진 후 아수라장이 된 지음에서 ‘나’를 찾느라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붕괴된 카지노 건물에서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쓰러진다. ‘나’는 병실 할머니 곁을 지키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가족의 내력, 나아가 전당포와 지음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한때 석탄을 캐기 위해 오르던 길이 이제는 도박을 위해 오르는 길이 된 풍경을, ‘새마을 대운’이 끝나고 ‘올림픽 대운’을 거쳐 ‘월드컵 시대’까지, 그 역사의 음화가 할머니의 입으로 소상히 밝혀진다. 이로써 그간 알고 있었거나 상상했던 것, 기억하고 있던 것들의 빈틈을 채워나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와 엄마, 삼촌은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찾아 함께 떠난다.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는 안 본 것도 아주 본 것처럼 얘길 하네.” 그건 칭찬도, 감탄도, 빈정거림도, 꾸짖음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할머니는 당부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고 나서도 분노하지 않거나 스스로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면 그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라고. 언젠가 정말로 그런 때가 되면 이 길에서 시작된 이야길 해봐야겠다. 그저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는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으니까._295쪽
문제적 상상력, 진진한 캐릭터, 넓고 깊은 서사의 힘
재난의 시대를 거쳐 이윽고 마주한 치유와 성장의 이야기
돈 때문에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에서 출발한 《카지노 베이비》는 한 아이의 성장담을 통해 현시대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기어이 희망을 지켜내는 서사로 완결된다. “할머니의 일터가 ‘올림픽’ 다방에서 ‘월드컵’ 전당포로 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의 역사는 개발 자본에서 투기 자본으로 전화해온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서영인 문학평론가) 소설은 인간 욕망의 금자탑이 우뚝 솟는 과정과 결국은 무너지는 모습까지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간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재난을 마주하는 각기 다른 반응들도 그 재미가 진진하다.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어른들의 복잡다단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흡입력을 발휘한다. 나아가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애정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생명력을 선사한다. 카지노 랜드는 결국 흔들려 무너져내렸지만, 도시가 붕괴한 뒤에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기반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앞으로 그들이 살아나가야 할 붕괴 이후의 삶이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296쪽) ‘나’가 마지막에 “지음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삶을 향한 그러한 용기 덕분이리라.
“우리는 모두 지금 시대가 어떤지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개발과 탐욕에 취한 우리가 지금 어떤 꼴이 되어버렸는지에 대해서도. 이제 무엇을 중시해야 할까.”(양경언 문학평론가) 그다음을 물어야 하는 때, 《카지노 베이비》가 오롯이 설득해낸 이 낙관의 장면은 그래서 더욱 미덥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넓고 깊은 서사, 섬세한 문장과 문제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룬 《카지노 베이비》이후 강성봉 작가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