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산문 모음집
모자 쓴 이마에 땀이 어리우고 등 끝이 다근하여졌다. 눈이 부시다. 모든 것이 행맑다. 실버들 가지는 출렁거리고 처녀의 치맛단이 팔팔거린다.
오! 봄이다. 개고리야. 논 둔벙에 알을 쓸지 않으려느냐? 숲 속의 솔개야. 하늘에 무늬 놓은 구름을 너의 억센 날개로 쓰다듬지 않으려느냐? 옛날의 동무야. 단장 밑에서 각시풀을 뜯어 소꼽질하던 기억을 지금 어디서 하려느냐? 봄은 앞들 백양목과 대숲에다 회초리 하나와 마디 하나 더 늘여 주려 왔고 앞 산허리 공동묘지에 무덤을 여러 낱 보태러 왔다.
지금 온 봄인들 희열과 그 그늘인 애적哀寂을 함께 가져오지 안 했을 리 없다. 그리하야 희비가 담긴 그림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돌아온 실춘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