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병원으로 놀러 오세요
‘소설 쓴 사람 술 마시는 날’
합평반 사람들은 합평하는 날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합평은 소설 하나를 놓고 여러 명이 평가를 하는 자리입니다. 평가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작가의 감상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같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읽지 않고 오시는 분도 있었구요.
‘이미 세상에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은데 내가 꼭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소설을 써온 누나가 합평이 끝나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욕을 먹는 일’은 수준에 이르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고 잘 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직설적인 성향이 그 욕심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례에서 처음부터 천재성이나 재능, 특별함을 가져야만 소설을 쓰거나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첫 책은 21살에 자비출판한 44p짜리 시집이었고, 공무원 출신의 화가 앙리 루소는 50대 이전까지는 조롱만 당했다고 하죠. 헨리 데이빗 소로, 레드제플린, 니체도 마찬가지입니다.
4세 아동이 10개의 단어로 만들 수 있는 문장의 개수는 360만 개라고 해요. 가르치기 전부터 무의미한 배열 속에서 나름의 의미 있는 문장을 뽑아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이를 두고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건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생득적이라고 말해요. 우리의 경험과 상상이 각자의 언어를 통해 고유성을 띄고 드러나는 것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족은 문자가 없지만, 이야기를 구전 계승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색색의 구슬을 묵주로 꿰어 흰색은 시작, 붉은색은 성장, 검은색은 위기, 노란색은 성취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 후 그것을 굴려가며 부족에 이야기를 전한다고 하지요. 저는 제가 가진 이야기, 상상하는 이야기를 구슬로 엮어 전파하는 창작자이자 메신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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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부재한 사회는 죽은 사회다. 그런 점에서, 허광훈 작가의 단편집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오세요〉는 넘치는 상상력으로 생명력을 뿜어낸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15초 광고’를 봐야 한다면? 환자가 아니라 광고를 대는 광고주가 병원의 고객이라면? 작가는 통통 튀는 상상력과 탄탄한 필력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책을 덮고나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책 말미에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인 MBTI를 활용한 단편소설이 실렸다. 생생하게 구현된 인물은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하는 기시감마저 들게 한다. 잃어버린 감수성을 찾아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에디터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