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 취업, 연애, 결혼, 자녀교육 그리고 노후준비에 이르기까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져 있는 삶의 끝없는 일정들과 그런 행복의 조건을 하자 없이 취득해 내기 위한 소리 없는 투쟁들…. 이 소설은 어째서 삶은 인간에게 행복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며, 인간은 왜 삶의 그러한 부조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고찰이다.
유서 깊은 목회자 가문에 태어났으나 무슨 이유에서 인지 한글을 깨치지 못해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결국 영영 가족을 떠나버린 작은 오빠.
최고의 소프라노를 꿈꾸며 명문대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업실패와 죽음으로 졸지에 성매매 업소 생활을 하게 된 혈육 같은 친구.
학부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자신만의 역사서를 두 권이나 집필할 만큼 비범한 역사학도였으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근무하던 자신의 여동생이 백혈병에 걸리자 그 회사를 상대로 여동생의 산업재해 인정을 받아내기 위한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첫사랑….
삶이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불가항력적인 사태다. 불행은 어떠한 인과성도 없이 제각각의 인생 위에 무작위로 할당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치자마자, 삶의 정상적인 궤도로부터 이탈해버린 그런 모든 이들에 대한 기억을 뒤로한 채 공립고등학교의 정식교사 생활을 시작하는 주인공 「여자」. 하지만 삶의 부조리에 대한 고뇌에 짓눌려 지내던 대학 시절 내내 여자를 괴롭혀오던 우울증은 교사가 되어서도 쉬 사그라지지 않고, 여자는 이내 학교 제도에 끝없이 예속된 자신의 삶에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끝내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 여자가 선택한 인생의 마지막 진로는 결혼.
하지만 행복은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혼을 한 뒤에야 알게 되는 남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뜻밖의 사건들, 그리고 불쾌한 만남들. 이제 여자는 자기 삶의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자신의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시간 속으로 발을 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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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있다. 현대 사회는 많은 것을 결정해 준다. 학교에서는 시간표를 짜주고, 회사에서는 주어지는 일정이 있다. 기껏하는 고민이라고는 점심에 뭐 먹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 우리는 작은 선택조차도 외부에 의탁하고, 의탁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진학, 취업, 결혼까지 정해진 길로 달려온 여자는 마침내 정해진 운명을 거부한다. 여자는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 그러므로' 삶이란 불가항력적인 사태’(책소개 중)이며, 소설은 한 여자를 중심으로 실존의 깊이를 무겁게 드러내 보인다. -에디터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