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목처럼 시체와 함께 있게 된 두 남자의 이야기다. 트렁크, 시체, 방안. 이 간단한 장치 외에 별다른 실마리나 추가 사건 없이 독자가 두 남자와 함께 느끼는 더딘 시간 정도만 남아있다. 그리고 애초의 계획이 계속해서 어긋나고 방해받는 상황의 연속. 룸메이트인 두 남자의 심리적인 변수에 트렁크 속 시체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공포의 상수가 맞물리면서 몰입감을 높인다.
〈책 속에서〉
마침내 날이 밝았다.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움직임도 말도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안도감에 이어 공포를 읽었다. 점점 날이 밝아오는 동안 새로 깨어난 거리에서 목소리들의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들은 마치 미지의 고발자가 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와서는 그들을 체포라도 할 것처럼 긴장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개입이 있다면, 아니 그들이 죽거나 성난 폭도의 손에 붙잡힌다면 차라리 좋을 것 같았다. 어떡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몇 시간 동안 바닥에 엎드려 죽어 있는 한 여인의 시체 곁에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그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그 공포의 연속을 깰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모리스 레벨(Maurice Level)
프랑스의 의사이자 작가. 빌리에 드릴라당과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잔혹하고 냉소적인 이야기(‘Contes cruels’ 혹은 ‘Sardonic Tales’로 불린다)의 대표 작가다. 외과의로 일하면서 야간 근무 짬짬이 글을 쓰기 시작해 신문 지면에 발표했다. 짧고 간결한 레벨의 많은 작품들이 공포와 선정성을 강조해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악명(?)이 높았던 연극 “그랑기뇰”의 무대에 올랐다. 그의 작품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는 달리, 병적인 것에 대한 취향도 없었고 심각한 비관론자도 아니었다. 다만 삶의 전반에 우울한 기질이 오래토록 스며있었다고 전해진다. 의사로서 지닌 병증과 환자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작품에 투영되어, 정상과 비정상, 광기와 이성의 경계를 섬세하면서도 명확하게 그려냈다. 나중에 의사 직을 그만두고 작가로 나섰다. 영향을 받은 릴라당이나 포, 모파상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레벨의 천재성이 타국에 비해 일찍 번역 소개되고 각광 받았다. 이런 움직임에 H. P. 러브크래프트의 호평도 일조했다. 초자연성보다는 뒤틀린 환경과 운명을 통해 공포를 그려냈다. 영역본 기준으로 『돌아온 사람들』, 『공포의 움켜쥠』, 단편집 『미스터리 호러 이야기』 등의 대표작들이 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