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색채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1927년 작품으로, 같은 해 9월 《어메이징 스토리스 Amazing Stories》에 실렸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개인 서한에서 “내가 창조한 대부분의 괴물들은 내가 원하는 우주적 주제 의식을 만족스럽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끼는 「우주에서 온 색채」에서 색으로 표현된 존재만은 예외입니다.”라며 이 작품을 최고라고 자평했다고 하죠. 평단과 독자들도 이 작품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으로 화답했습니다.
이런 호평을 받은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크툴루의 부름」 이후 후기 작품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은 공포와 SF의 결합이 본격화되고 정점에 오른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불쑥 우주에서 찾아든 색채는 순박한 농부 나훔과 그의 가족을 파멸시킵니다. 색채는 나훔의 파멸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동정하지도 않죠. 러브크래프트는 냉정하고 거대한 우주와 상대적으로 나약한 인간 사이에 색채라는 실체 없는 분위기를 주입함으로써 긴장감을 이끌어갑니다. 러브크래프트의 말대로 “분위기”로 승부하고,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책 속에서〉
아컴 서부, 여기저기 솟아있는 험준한 산과 울창한 골짜기에 아직 도끼날이 닿은 적 없다. 어둡고 비좁은 계곡에 나무들이 기괴하게 기울어져 있고, 실개천엔 햇빛의 반짝임이 미치지 않는다. 완만한 비탈에 웅크리고 있는 농가들은 이끼에 뒤덮인 채, 거대한 암벽의 비호 속에서 옛 뉴잉글랜드의 비밀을 반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농가들은 모두 비어 있는데, 큼지막한 굴뚝들은 무너져가고 낮은 박공지붕 아래 지붕널들이 위태롭게 불거져 있다.
옛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고, 외지인들도 이곳에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이탈리아인, 폴란드 인들이 살려고 왔다가 떠나버렸다. 보이거나 들리거나 만져지는 그 무엇 때문이 아니었다. 상상이 되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 그곳은 상상에 좋지 않았고, 밤에는 편안한 꿈을 꾸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외지인들을 계속 쫓아버렸던 게 분명하다. 아미 피어스 노인이 그들에게 그 ‘기이한 날’에 대해서는 귀띔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몇 년 사이 머리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아미 노인은 그 곳에 남아있는 유일한 토박이였고, 그 기이한 날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약 그 날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다면, 그의 집이 탁 트인 들녘과 아컴 인근의 여행자 도로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