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배링턴 카울스
「존 배링턴 카울스」는 『코난 도일 호러 걸작선』( 개정증보판, 출간예정)에 새로이 추가 수록되는 단편이다. 1884년 《카셀스 새터데이Cassell's Saturday》를 통해 발표했다. 도일이 10년 뒤에 발표한 사이킥 뱀파이어의 대표작 「기생충The Parasite」과 여러모로 비견대는 작품이다. 상대의 정신과 육체를 점령하고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 오컬트 요소, 최면 암시 등 「기생충」의 축소판에 가깝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기생충」은 깊이 면에서 「존 배링턴 카울스」는 빠른 전개와 흥미 면에서 상대적인 강점을 가진다. 이 작품의 팜므파탈로 등장하는 케이트 노스콧은 뱀파이어 변종으로서 「기생충」의 사이킥 뱀파이어나 은유적 뱀파이어보다도 조금 더 실체적인 위협감을 자아낸다. 노스콧은 모든 남자의 심장을 멎게 할 만큼 절세미인으로 묘사되는데, 잔인함과 사악함을 교활하게 드러낸다. 이 여자와 약혼한 남자들은 하나둘 죽음을 맞는다. 이 피해자 중에 한 명이자 화자의 친구인 배링턴 카울스의 말을 빌리면, 그녀는 “무덤에서 나온 구울이자, 뱀파이어며 늑대인간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정신을 유린당하는 고통만큼 물리적인(동시에 초자연적인) 공포감이 몬스터 급이다.
〈책 속에서〉
내가 가여운 친구 존 배링턴 카울스의 죽음을 초자연적인 힘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현재 대중이 느끼는 감정 상태에서 그런 결론의 여지가 받아들여지려면 우선 그걸 뒷받침할 일련의 증거들이 확실해야 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슬픈 사건을 초래한 상황에 대해서만 최대한 간결하고 분명하게 말하겠다. 그리고 독자들이 각자 추론을 도출하게끔 놔두려고 한다. 어쩌면 어느 누군가가 내게 어둠으로 남아있는 것에 빛을 비춰줄지도 모르겠다.
배링턴 카울스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의학 학위 취득을 위해 에든버러 대학 근처로 이주했을 때였다. 내가 세든 집 주인 여자는 노섬벌랜드 가에 커다란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과부로 대여섯 명의 학생에게 하숙을 쳐서 생계를 꾸렸다.
배링턴 카울스는 나와 같은 층에 세를 들었다.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후에는 작은 응접실을 공유하여 그곳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가 죽는 날까지 작은 의견충돌 정도로는 끄떡없는 우정을 만들었다. 카울스의 아버지는 시크교 연대의 대령으로 오랫동안 인도에서 복무 중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상당한 돈을 보내주었지만 그밖에 다른 부성애의 표현은 거의 없었다. 불규칙적이고 간단한 편지를 보내는 정도였다. 인도에서 태어나 열대 지역의 열정을 타고 난 카울스는 아버지의 그런 무관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빈자리를 채워줄만한 피붙이가 세상에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애정을 오롯이 내게 쏟았고, 남자들 사이에선 드문 방식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더 강렬하고 깊은 열정에 사로잡힐 때조차 그로인해 우리 사이의 우정이 침해된 적은 없었다.
-제1부 중에서
그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팔을 저으면서 소리쳤다. “악마라고!” 그가 소리쳤다. “무덤에서 나온 구울. 아름다운 얼굴 뒤에 숨은 뱀파이어의 영혼! 아, 신이여 저를 용서하소서!” 그는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더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갔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했어. 그 여자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말할 수 없어. 난 지금도 그녀를 너무 사랑해.”
-제2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