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쿤두&아미나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관에 초대된 이번 작가는 에드워드 루커스 화이트(Edward Lucas White)입니다. 당대 역사소설로 호평을 받았던 화이트는 오늘날 호러 단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화이트의 역사 소설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후배 작가인 프리츠 라이버에게 일독을 권한 것을 보면 말이죠. 다만 러브크래프트가 애독했던 화이트의 작품은 단편집 「루쿤두」였다고 하죠.
여기에 소개하는 화이트의 두 단편은 작가의 필치를 잘 보여주는 「루쿤두」, 러브크래프트의 구울에 영향을 준 「아미나」입니다.
「루쿤두」는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란 호평과 함께 외국 앤솔로지에 가장 많이 실리는 단편 중에 하나입니다. 「루쿤두」는 화이트가 선사할 수 있는 공포의 맛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탐험가 랠프 스톤에게 벌어진 일을 화자가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랠프 스톤에게 주술사의 저주가 내렸다는 것인데 아프리카의 저주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단연 앞서있는 단편 중에 하나일 겁니다. 더구나 저주로 간단히 넘기기엔 시각적인 여운이 인상적입니다.
「루쿤두」를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직접 연결하는 키워드들도 있습니다. 다소 포괄적이지만 흥미로운 방식인데요. 고딕 문학을 기점으로 하는 “바디 호러(Body Horror)” 즉 신체를 훼손하거나 퇴화하는 방식의 신체 공포가 그 일례입니다. “미지의 존재(타자)”와 나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공포도 또 다른 연결 고리입니다. 「루쿤두」에서 몸 안의 기생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선 외적 존재로 형상화된 것이 미지의 타자일 듯 합니다. 내가 이 타자가 되거나 은폐되거나 암시된 상호간의 관계성을 깨달을 때 공포감은 극대화됩니다. 「루쿤두」는 100년 전에 쓴 단편이지만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장면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은 것도 이런 연결고리 때문일 겁니다.
화이트의 「아미나」는 러브크래프트의 개를 닮은 구울에 영감을 준 단편입니다. 이는 로버트 E. 하워드, 로버트 블록 등의 구울에 영향을 주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구울 자체는 러브크래프트의 독창적인 창조물은 아닌데요. 이슬람 이전 아랍 신앙에서 기원한다는 구울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온갖 지저분함과 기괴함을 다 섞어놓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외모로 한 성깔하기로 알아주는 몬스터와 언데드 계에서도 구울이 보여주는 비주얼 쇼크는 상당합니다. 무덤이라는 거주 공간과 인간의 시체를 먹는 식생활도 어색하지 않게 잘 소화해내니까요.
러브크래프트는 「아미나」의 개를 닮은 이미지와 여러 변형적 요인을 가미한 구울을 선보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구울은 크툴루 신화뿐 아니라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또 다른 축인 드림랜드(dreamland)까지 광폭 행보를 보입니다. 러브크래프트식 변종 구울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인간에게서 기원하되 이는 인간의 자발적인 선택 내지 유전적 변이라는 설정입니다. 개를 닮은 구울뿐 아니라 인간을 닮은 언데드처럼 작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러브크래프트의 구울에 새겨진 「아미나」의 영향은 분명합니다. 왈도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 나름 냉철하고 이성적라지만 어딘지 어리숙한 회의주의자입니다. 이런 왈도가 페르시아(이란)에서 맞닥뜨린 구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자로 위장하여 왈도를 유인하지만 실상은 개의 모습을 한 구울이군요.
〈책 속에서〉
스톤은 깨끗했고 수척해보이진 않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어. 의식불명은 아니고 혼란한 상태였지. 누구를 지휘하거나 막아내거나 할 상황이 아니었어. 우리가 그의 거처로 들어간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고 우리가 거기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어. 나는 어디서든 그를 알아볼 수 있었지. 물론 그의 소년 같은 민첩함과 우아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어. 그런데 머리는 더욱더 사자 같지 뭔가. 머리칼은 숱이 여전히 많았고 노란 곱슬이었어. 병중에 기른 곱슬곱슬한 금발 수염도 그를 변화시키진 않았지. 체격은 아직 거구였고 가슴은 우람했어. 두 눈은 흐릿했지. 단어가 아닌 의미 없는 음절들을 웅얼거리고 횡설수설 지껄였어.
이담이 반 리텐을 도와서 스톤의 옷을 벗기고 살필 수 있게 했지. 오랫동안 병중에 있는 사람치고는 근육 상태가 좋았어. 무릎, 어깨, 가슴 외에 흉터는 없었어. 양 무릎과 그 위로 둥그스름한 흉터들이 20개, 양쪽 어깨에는 10개 이상인데 모두 앞쪽이었지. 두세 개는 개방창이었고, 너덧 개는 아문지 얼마 되지 않았더군. 양 옆구리에 하나씩 도합 2개, 흉근에 하나씩(왼쪽에 있는 것이 오른쪽보다 더 위치가 높고 더 측면에 있음)을 제외하고 부어오른 곳은 없었어. 종기나 옹 같지는 않았어. 뭉툭하고 단단한 뭔가가 깨끗하고 건강한 살을 뚫고 튀어나온 것 같았고 염증도 그리 심하지 않았지.
__「루쿤두」 중에서
연기가 효과를 발휘하고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왈도의 혼란은 악몽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도살 과정에 참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잠자코 후방에 물러났지만, 호기심만은 어쩌지 못한 채 학살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렬로 늘어놓은 10구의 시체를 보면서, 그는 모두가 살인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가장 놀라운 모험의 날이었음에도, 그 하루의 불침번과 결말은 주마등처럼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__ 「아미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