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그 수많은 날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이 소설이 깨우쳐준다.”_김혜진(소설가)
“처량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크리스마스를 좀 그럴듯하게 보냈으면 하는 것 정도.”
사실 완벽한 크리스마스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크리스마스를 겪으며 성장하고, 그날들 속에 부모의 무참한 시간과 혼란스러운 감정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으며 어른이 되는 건지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그 수많은 날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이 소설이 깨우쳐준다. ― 김혜진(소설가)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해지는 크리스마스. 그 들뜬 분위기를 마치 전투하듯 “통과해야만 하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있다. 저명한 화가로서의 경력을 한순간에 내팽개쳐버리고 남편과도 이혼한 채 도서관 사서로 쓸쓸히 살아가는 엄마 누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악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고 있는 아들 으제니오. 찾아와줄 손님 하나 없이, 그들 둘이서만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겨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장난감 가게, 잡화점, 공원, 워터파크, 백화점 등을 쏘다니지만, 엄마의 좌절과 아들의 고통은 점점 더해간다. 마침내 친구의 별장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난 모자를 기다리는 것은, 속물적이고 괴팍한 친구의 가족들과 누크의 전 남편이다. 누크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이것이 자신이 엄마로서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행복하거나 평화롭지만은 않다”. “그것은 자비 없는 세상과 싸우는 일이며 수시로 들이닥치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소설가 김혜진). 누크는 어린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외로움과 좌절뿐인 현실을 이겨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아이를 망쳐놓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픔을 주지 않는 엄마,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엄마, 완벽한 엄마는 오로지 죽은 엄마밖엔 없을 거라고.” 소용 없는 사랑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까만 그을음만 남는다. “어떻게든 잊어버리고 싶은” “사랑으로 베풀었지만 전혀 기쁨을 주지 못한 선물” 같은 크리스마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우리는 과연 알고 있을까?” 이 물음에 확신을 찾아가는 날들이 언젠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반복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완전히 망쳤다.” 애쓴다고 모든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니까. 카나리아는 죽고, 워터파크의 인파는 불쾌하고, 백화점은 을씨년스럽다. 초대받은 친구네 집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받아 기가 죽는다. “알지, 너의 그 대단한 희생, 그 엄청난 사랑이 아이한텐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는걸?” 친구, 전 남편, 심지어 당사자인 아들까지 모두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누크가 그의 곁을 떠나야 한다고 부추긴다.
화가로서의 은퇴, 남편과의 이혼, 아이의 양육……. 행복을 위한 누크의 선택은 모두 좌절된다. 매사 냉담한 그녀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별로 없”는 사람 같다. “그림의 떡일 뿐”인 행복은 꼭 “원수 같”다고,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그 안간힘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고통은 결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예기치 않은 불행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빚진 게 없다.” 그러니 “바다로 나가라. 두려워 말고.” “난파를 당해보는 것만이 바다의 거대함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면, 어떤 희망인들 못 가져보랴.” 실망스러운 크리스마스를 겪어본 아이만이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알 수 있다.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긴 한가…….” 아무런 확신도 없지만 행복을 향한 고통의 항해는 계속된다. “꿈꾸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행복이 될 테니. 부딪치고 깨지고 애쓰는 “모습이 우습긴 하겠지만, 그냥 상관 않기로 했다.” “늘 숨기만 하고 결국은 떠나가버리는 사랑”이라 해도, 그것을 지키려는 분투야말로 우리를 살게 만드는 ‘진짜’ 힘의 원천일지도 모르니. 미련한 사랑인 것을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