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킬리만자로의 표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시인 로젠크란츠는 자신의 고달픈 인생역정을 ‘물방울’의 흐름으로 비유하면서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핍박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끊임없이 시를 만들어냈습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듯이, 작가는 작품 발표를 통해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10만 종의 조개 중 100분지 1만이 진주를 만든다고 합니다. 조개의 상처가 암으로 변형된 것이 사람에게는 귀한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조개처럼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지만, 고통을 어떻게 승화 시키는가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문학을 한량들이나 하는 사치요 장식품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학은 결코 안온한 삶 가운데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푸른 산빛이 있고 붉은 단풍나무가 있을지언정, 시퍼런 삶의 정신이 없이는 작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학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일상을 표현하면서 어떤 개인적이거나 일반적인 속생각을 내리는 것이 아닌, 삶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을 글로써 녹여낸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심의 경지에서 도를 닦는 것처럼 고고한 자세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즉 삶에 천착하면서 현실 속에 내면을 동일시하고 대상을 관찰하는 가운데 작품이 터져 나오며 창작의 첫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숨 가쁜 강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경쟁적인 돈벌이와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신없고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자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점점 감정이 메말라감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만의 문학’이라고 표현할 만큼 문학을 하는 작가들의 세계가 폐쇄적이고 고답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천천히 세상과 소통하며 ‘마음’을 살펴야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학은 이제 생활 속의 문학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배고플 때 밥 먹고, 졸음이 쏟아지면 잠자듯이 글도 생활의 일부분인 ‘마음 살핌’의 도구로 활용될 때 우리의 육신은 생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물건도 자주 닦아야 광이 나듯이 ‘마음자리’도 잘 보살펴야 토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깨달은 자의 논리로 보면 세상은 늘 새롭게 사유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모든 존재가 관계 속에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분별하려는 것 또한 부질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깨달은 자는 꾸밈이 없고 분별이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삶을 구현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평상심平常心이라고도 합니다.
문학인들이 흔히 펜을 들 때 잘못 오해하여 세상을 향해 질타하는, 대갈일성大喝一聲의 글쓰기만이 진정한 문학인의 자세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다양한 장르, 여러 가지 성향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세상 현실 속에서도 일관되게 ‘마음’을 살피고 다스려야겠습니다.
일관되게 강물이 흘러가듯 조용하고 담담하게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 속에서 요란하지 않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향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나듯 꾸밈없이 소박하게 풀어낸 글에도 아름다운 향기가 오래 남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아오면서 ‘마음 닦음’으로 정리해봅니다.
―〈머리말〉
- 차 례 -
책머리에
제1부
환골탈퇴換骨奪胎
순응과 문학인의 자세
문학과 노동의 소외
돼지껍데기
사량도를 아시나요
우리의 병근이는 어디에
문학과 오미五味의 맛
내려놓는 삶의 휴식
겨울바다의 페이소스와 만추晩秋
연어의 회귀본능
제2부
문학과 자유로운 영혼, 스펙트럼
춘궁기 보릿고개와 춘투春鬪
고마운 밥숟가락
고독의 섬, 그리움의 섬
도시의 그림자
가을의 이별여행
겨울의 냉정과 열정
음유시인과 문학 풍경
초원의 빛
통술집, 오동동이야
제3부
역마살驛馬煞
추억은 바람처럼
오월이 오면 생각나는 단상
문학과 치유의 예술 장르들
벽과 장미의 생명력
반역과 복수의 그 빛 슬픔
페르소나Persona와 첫눈의 기다림
그리움과 기다림의 인내
골목, 뒤안과 어머니
가을의 애상哀傷과 그리움
제4부
황혼기와 청춘의 여명
삶과 죽음은 하나의 경계
청일호 여선장과 바다 이야기
황혼에 떠올린 아버지의 기억
가을의 단상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무진기행과 기다림의 인내
문학은 창조적인 에너지
외로움의 그림자
짙은 외로움과 문학인
제5부
그리움은 봄밤의 랩소디
커피 한잔의 향기와 그리움
어느 바람 부는 날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
건강한 문학이 필요할 때
달팽이와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라지는 얼굴들
겨울바다와 기다림의 미학
늦가을의 글쓰기
맑은 마음으로 하는 문학
제6부
허기짐과 찔레꽃 향수
가을의 진신사리와 우주의 윤회
확장된 자아를 찾아서
절정의 오르가즘과 치유의 카타르시스
붉은 노을의 맛과 즐거움
봄은 사랑의 계절인가
문학과 마음 챙김
의미 없는 무한 반복은 없다
집단지성과 사회화
■ 서평
거친 광야에서 제자리로 돌아온 바람 같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