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 동물
후안 마요르가는 2002년 영국 로열 코트 극장으로부터 짧은 희곡 쓰기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국적이 다른 네 명의 극작가가 각각 자국의 정치 이슈를 10분에 담아 내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스페인은 외국인 법 개정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국론 분열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마요르가는 서류 하나로 사람들을 시민과 비시민,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어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실을 성찰하고, 〈좋은 이웃〉이라는 짧은 희곡을 완성해 로열 코트 극장에 제출했다. 이를 손봐 이듬해인 2003년 마드리드에서 〈야행성 동물〉을 선보였다.
야행성 동물은 사냥꾼이나 포식자를 피해 주로 밤에 활동한다. 〈야행성 동물〉에 나오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키 큰 남자와 키 큰 여자, 키 작은 남자와 키 작은 여자, 이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한 아파트의 위층과 아래층에 살면서 간혹 마주치곤 하는 이웃이다. 이들은 뭔가를 숨기고 있고, 각자 다른 이유로 밤에 깨어 있다. 어느 날 키 작은 남자는 키 큰 남자에게 다가가 포도주를 권한다. 그날부터 둘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의심할 바 없이 다정한 친구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미묘한 힘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 힘의 방향은 다소 일방적이다.
마요르가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문제를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를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갈등의 발단을 스페인만의 문제로 국한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법이 보호하는 국민과 그렇지 못한 비국민이 자연스레 서열화되고 그 안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후안 마요르가의 주제의식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생각해 보니 한국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서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나라일 것입니다. 따라서 힘이 더 센 사람들의 우정을 수용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