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이 8월 5일이라는 거야.
어제는 8월 22일이었고!”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기획작!
삼남매의 대환장 타임루프 탈출기
이천우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가 북다에서 출간되었다. 타임루프라는 미스터리 판타지 요소를 가족 드라마에 녹여낸 작품으로, 오랫동안 시나리오 일을 해온 작가 특유의 말맛이 넘치는 필력과 생동감 넘치는 대사로 따뜻한 힐링과 경쾌한 코미디를 함께 선보인다. 익살스러운 유머와 소소한 공감이 가득한 이야기를 통해 쳇바퀴를 돌리듯 반복되는 우리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재기 넘치게 표현한 작품을 지금 만나보자!
이혼의 갈등, 실연의 상처, 짝사랑의 애환. 형태는 다르지만 각기 혹독한 ‘사랑의 좌절’을 겪고 있는 삼남매에게 뜬금없는 타임루프가 찾아온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을 기점으로 자꾸만 17일 전으로 돌아가니, 지금 겪는 트러블도 아버지 장례도 질릴 대로 질리게 된다. 반복하다 보면 혹시 삼남매의 상황이 나아질까? 타임루프와 아버지의 장례와는 무슨 상관인 걸까?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증을 느끼며 한두 장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삼남매의 좌충우돌 분투가 시작된다
이혼에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장남 ‘진태’, 댄스 학원에서 만난 운명의 상대에게 배신당한 슬픔에 빠진 차남 ‘진수’, 동아리 선배 언니에 대한 짝사랑과 성정체성을 한꺼번에 깨달은 막내 ‘해민’. 삼남매가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아버지가 죽음을 맞는다. 오랫동안 의식도 없이 투병 중이었던 터라 이미 마음의 준비가 끝난 삼남매는 큰 슬픔 없이 얼렁뚱땅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턴테이블과 LP판을 발견한다. 틀어보니 익숙한 멜로디의 재즈가 흘러나오는데 어느 순간 음악 소리가 기괴하게 늘어지더니 툭, 판이 튀며 세상이 캄캄해진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7일 전 아침이라는 황당한 상황. 하지만 17일을 몇 번 반복해도 삼남매의 복잡한 상황은 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장례를 치르기도 지친 삼남매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운다.
“장례 때문인 거야. 노하셨던 거라고!” (121쪽)
이번에는 삼남매가 합심해 이전과는 다르게 아버지를 추모하는 진정성이 넘치는, 마치 살풀이 같은 장례식을 치르고, 각각 반복되는 사랑의 좌절에서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다시 되돌아가 삼남매를 새로운 갈등, 새로운 배신, 새로운 상처에 시달리게 만든다. 해결되지 않는 타임루프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삼남매는 아버지의 다른 유품인 일기로 눈을 돌려 새로운 힌트를 얻는다.
미스 박, 미스 김, 에이미……. 아버지 대학 시절에 썸싱이 있던 여자들. 일기에 적힌 그녀들과의 가슴 절절한 러브 스토리를 보며 삼남매는 의기투합한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그분을 못 봬서 성불을 못 하시는 것 같다고, 그러니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타임루프에서 벗어나자고.
그때부터 삼남매는 5권이나 되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함께 정독하고, 여태 봐왔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일면들을 알게 된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는 말로 자식들을 다그치기만 했던, 성공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인생에 숨겨진 사연을 알아가며 시간의 틈바구니에 갇힌 삼남매의 일상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후회할지도 모를 사랑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힘찬 응원
흔한 타임루프물과는 달리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에서는 시간이 되돌아가도 로또 번호 하나를 맞출 수도 없고, 갈등을 겪는 상대방의 마음을 단번에 파악할 수도 없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삼남매에게 있어 결국 지금의 사랑으로 인한 고통과 좌절은 변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나 번뜩이는 깨달음 없이도 그들은 꿋꿋하게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나가며 변화하는 내일을 꿈꾼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아버지와 한창 인생을 헤매는 중인 삼남매. 멀기만 했던 가족이 서로를 이해해가며 삶에 있어 ‘후회하지 않는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를 함께하며, 독자는 짠한 동질감과 애틋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후회가 반복되는 인생이라도, 후회할 게 뻔한 사랑이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진솔한 응원이 읽는 이의 마음에 힘차게 가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