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게임 회사 n개월 차 신입 사원
소설가 대호 씨의 일일
문창과를 나온 소설가 지망생은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많은 직업군이 있겠지만 주인공 대호는 한 중견 게임 회사의 시나리오 팀으로 흘러 들어간다. 회사는 가상현실에 등장하는 귀신들을 무찌르는 게임 〈Project G〉를 만드는데, 대호의 업무는 그 귀신들의 설정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맛깔나게. 소설을 쓰려 했던 대호는 이제 귀신들의 설정을 쓰며 기괴한 게임업계에 점점 깊숙이 발을 담그게 된다. 입사 후 대호가 한 첫 질문에 대한 본부장의 답은 다음과 같다.
“〈Project G〉의 G가 무슨 뜻인지 여쭤도 될까요?”
“되고 말고. 그 G는 굿에서 따왔네, 굿.”
“Good이요?”
“아니, 영어 말고. 무당이 하는 굿.” (20쪽)
귀신과 굿과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처럼 대호의 업무는 어지럽게 돌아간다. 출근 첫날부터 야근은 물론이고 3D 프린터로 출력한 귀신과 대화하거나 사무실에 무당이 찾아오는 해괴한 광경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처럼 이상함을 감지할 새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개발실에서, 게임 캐릭터가 아닌 진짜 귀신이 나타난대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겁을 먹고 퇴사하거나, 게임처럼 때려잡거나, 그것도 아니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면 그만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대호는 받아들이기로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견디며 오늘도 내일도 귀신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대호는 “살면서 귀신 한 번쯤 봐야 성공할 수 있”다는 본부장의 말처럼 언젠가 다가올 대운을 기다리며 오늘도 차곡차곡 긁은 복권을 쌓을 뿐이다.
대호의 두 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본부장의 답은 다음과 같다.
“야근수당 있나요?”
“우리 포괄이야.” (21쪽)
취업, 가상현실 그리고 귀신
보이지 않는 공포로 직조하는 리얼리즘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을 읽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입 시절을 겪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작품 곳곳에 있다. 아무리 귀신을 밥 먹듯 마주치더라도 야근과 정리해고가 주는 공포를 상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품이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을 서슴없이 넘나드는 탓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게 되고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회사원은 누구나 잘리죠.”
“그렇더라고요.”
그때는 어쩐지 팀장의 목소리에서 무덤덤이 아니라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142쪽)
취업과 가상현실과 귀신은 모두 눈앞에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까울 수도 있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작품에 녹아 있는 공포와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작품은 실재하지는 않는 무언가가 우리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등장인물들을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망령은 게임 캐릭터였고 어떤 망령은 게임 개발자였으며 또 어떤 망령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파악이 안 되는 자들이었다. 망령들은 회사에서 회사로, 또다시 회사에서 회사로 발을 움직였다.” (155쪽)
대호는 게임 속 귀신들을 만들어내며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이 귀신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망령처럼 테크노밸리 이곳저곳을 배회하게 되는 것인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은 이렇듯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공포를 무덤덤하게 끌고 와 선보인다. 게임 속 귀신과 게임 밖 대호가, 소설 속 대호와 소설 밖 우리로 연결되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작품의 리얼리즘이 주는 현실적 공포를 안고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