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정체
외로운 이들,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고 사랑하면서 이별하는 슬픔 가운데를 통과한다. 텅 빈 공허 속에 펼쳐진 사랑은 삶과 사랑이 양면성을 드러내다가 관조하며 이방인처럼 바라보고 있다. 모든 마음의 소용돌이가 한바탕 사건이 되어 끝나고 나서야 기억하고 싶은 지점에 머문다. 어쩌면 우리는 환상으로 이끈 곳에 있었던 것일까.
슬픔의 정체는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된다. 슬픔이 방황을 매개로 삶이 주는 과제를 통해 슬픔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의 과정에서 슬픔은 하나의 카타르시스로 우리의 감정을 정화해주는 그 어떤 해답의 힌트는 아닐까 한다. 슬픔을 통과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슬픔은 다시 삶을 연결해주는 시작과 끝이 된다.
수많은 연결고리가 아우르는 존재의 하나이며 다른 하나이다. 삶은 마음의 모든 생각이 집약된 움직임의 리듬이 형상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은 우리가 불러들인 반복된 연결고리에서 나열된 하나의 알파벳이 여러 개의 조합으로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조합이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점에서 시간을 지나 사건이 되고 하나의 삶이 되었다. 마음의 조건을 만들어 생각의 조합으로 하나의 사건이 인생이 된다.
무의식으로만 존재했던 마음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생각의 파동을 따라 삶의 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마음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가 불러들인 형태로 드러나 우리의 사건 속 이야기가 된다. 나와 너, 그들, 그녀, 그는 그렇게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이유였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게 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은 반복된 연결고리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우연이고 필연인 것처럼 펼쳐지고 있다. 무엇도 거부할 수 없는 저항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는 그토록 많은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문제를 주고 해답을 주기 위한 힌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슬픔을 알아야만 행복의 가치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삶의 과정은 여러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리된 객체로 분산된 파편 속에 하나인 전체를 찾아 나선 여정이 되었다. 그렇기에 삶이 주는 과제를 통해 지나가야만 하는 여정이다.
그 가운데 슬픔은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삶에 투입되는 듯하다. 불편한 감정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성장과 새로운 인식의 전환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슬픔은 하나의 카타르시스로 감정을 정화해주는 어떤 해답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편은 아닐까? 우리의 생각들이 만들어낸 감정의 파노라마가 삶에도 그러한 것처럼 어떤 슬픔을 통과한다. 이런 의미의 메세지를 이 소설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덧바른 슬픔이었다.
슬퍼도 슬펐다.
모든 것을 관조하고 압축한
고요 속에 멈춘 듯 존재했다.
완전한 허무 속에 있는
슬픔이 응축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