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일본 사색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늘 다니던 거리에 나와 목적 없이 걸어 보는 것이다. 매일 지나가던 지하철 출입구 주위를 잠시라도 배회해보면,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 했던 거리의 표지판, 간판들, 우체통, 음식점들이 쑥 튀어나온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행위는 위대한 건축물이나 숭고한 자연을 보았을 때는 겪을 수 없는 다른 깨달음을 준다.
나는 지인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눌 때면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의 대화만 오가고 사소한 장면들은 외면당한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다. 왜 자신이 걷고 있는 보도블록 무늬에는 아무도 (그것이 독특하건 그렇지 않건)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이국적이라는 사실은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왜 대충 지나치는 것일까?
플라톤에 따르면 가이드북은 우리가 여행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있어 가장 방해되는 물건이 된다. 가이드북을 보는 선행은 여행지에서 건물을 인식하고, 음식을 맛보고, 유적지의 우월을 따지는데 있어 치명적인 선입견을 제공한다. 일본 땅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지나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이미 되어버리는 것이다. 기대하고 예측했던 것을 확인하러 가는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여행을 제대로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의 모습을 보고 충격 받지 않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진에서 봤던 웅장함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파리의 에펠탑도 숱하게 보아온 영상자료를 현실로 영접하는 순간일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소설 한 권만을 읽고 영국으로 떠난 여행자가 갖고 있던 인식은 얼마나 더 순수했을까? 우리는 그 감명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불행은 사소한 소원들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