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빛 경계
「궁금한 것이 있어요. 어째서 제게 존대를 하시나요? 신분을 따져도, 나이를 따져도, 제게 하대를 하는 것이 맞잖아요. 제 아버지께 존대를 하실 때도 생각했지만, 좀 이상해요.」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오후. 연화각의 대청마루에 앉아 기보(棋譜)를 보며 바둑을 공부하던 그는 백돌을 손에 든 채로 멈칫했다. 이윽고 바둑판에 돌을 올려놓고서 입을 열었다.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해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지요. 네이, 저는 전 황제였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상처를 가슴에 새긴 채 온나라로 왔던 리하르트의 황자 라크다엘.
그녀는 위로해주고 싶었다. 설사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런 이유라면 제게는 존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따지고 보면 같은 죄인이니까요. 저는…… 어머니의 목숨을 앗으며 태어났어요.」
한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만에 입을 연 그에게서는 더 이상의 존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가? 그래서 처음부터 네 눈빛이 낯설지 않았던 건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달래 듯 느리게 볼을 감싸는 그의 손길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가슴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