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시대 5 (완결)
인간은 여러 가지 착각을 하고 산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
내 몸매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아.
아무래도 그녀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
하지만 인간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착각은,
그래도 나만큼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감이다.
세계는 멸망했다.
소수의 인류만이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문명의 유산은 사라졌다.
폭력이 권력으로, 화폐는 휴지로,
도덕은 농담으로 전락하고
밤이 되면 죽은 자가 일어나 산 자를 잡아먹는다.
그런 세상에서, 파수꾼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남자가 있었다.
이것은 파수견이 되고 싶은 늑대의 이야기다.
▷ 지은이 : 백광호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소설로서 굉장히 굴욕적이군요.
그래서 세계를 멸망시켜봤습니다.
현실, 어디 한번 따라와봐라!
▷ <생존시대> 5권(완결) 미리보기
시내는 텅 비어 있었다. 전기 조명에 힘입은 불야성은 이제 옛말. 사람들은 해가 지면 전부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조명을 밝히는 연료조차 아쉬운 판이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난로 이외에는 불도 피우지 않는다.
더군다나 밤은 시체의 시간이다. 구역마다 화재와 시체를 경계하는 야경꾼만이 스산한 거리를 배회했다.
무기 상점 앞에 트럭을 세운 헬름은 내부에서 가스 랜턴의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상점에서 일하는 복지재단 대원들도 해가 지면 영업시간 끝이다. 문 닫아걸고 퇴근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남아 있을까?
안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목소리, 그리고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여자 목소리는 분명 예림이고, 남자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
그럴까?
뒷골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귓가에 속삭이는 강력한 환청에 헬름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권총을 빼들면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꼼짝 마, 같은 시시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불문곡직 대가리에 총탄을 박아 넣는다.
결단을 내리는 짧은 사이, 실내의 풍경이 투구의 눈구멍으로 보이는 좁은 시야에 들어왔다.
진열대 너머의 예림과,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 군인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헬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콜트 .45의 조준선을 머리에 정렬하려는 찰나, 히죽 웃음을 남긴 군인이 예림의 멱살을 붙잡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봉제인형처럼 단숨에 끌려온 예림이 사선을 가리자, 헬름은 검지에서 힘을 풀었다.
"오랜만이군, ■■. 아니, 지금은 헬름이라고 자처한다며?"
노이즈가 낀 것처럼 군인의 대사 한구석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음성에 담긴 이죽거림은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소름이 돋았다.
이놈은…….
살의가 치솟으면서 다시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