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그날도 그 전날과 같이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몽롱한 의식 속에 C동 R의 집에를 갔었나이다. R는 여전히 나를 보더니 반가와 맞으면서 그의 파리한 바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여 주었나이다. 저는 그의 집에 들어가 마루 끝이 앉으며 『오늘도 또 자네의 집 단골 나그네가 되어 볼까?』하고 구두끈을 끄르고 방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어 아무 데나 홱 내던지며 방바닥에 가 펄썩 주저 앉았다가 그의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 한 개를 꺼내어 피워 물었나이다. 바닷가에서는 거의 거의 그쳐 가는 가늘은 눈이 사르락사르락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나이다. 그때 R의 얼굴은 어째 그전과 같이 즐겁고 사념(邪念) 없는 빛이 보이지 않고 제가 주는 농담에 다만 입 가장자리로 힘없이 도는 쓸쓸한 미소를 줄 뿐이었나이다. 저는 그것을 보고 아주 마음이 공연히 힘이 없어지며 다만 멍멍히 담배 연기만 뿜고 있었나이다. R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멀거니 앉았다가 『DH』하고 갑자기 부르지요. 그래 나는 『왜 그러나?』하였더니 『오늘 KC에 갈까?』하기에 본래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저는 아주 시원하게 『가지』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R는 아주 만족한 듯이 웃음을 웃으며 『그러면 가세』하고 어디 갈 것인지 편지 한 장을 써 가지고 곧 KC를 향하여 떠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