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방
문학의 바탕은 상상력이다
봄꽃이 만발한 점심나절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있던 중, 까맣게 잊고 있던 《수필문학》지를 부인으로부터 받아들고 거꾸로 뒷면부터 읽어나갔습니다. 편집장님의 「내 삶의 길에 부르는 노래」 연재작품을 읽고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습니다. 지나간 호까지 앉은자리에서 섭렵, 킥킥거리고 웃다가 사래까지 들려 뱃살이 결리고 아파서 결국에는 한방파스를 붙이기까지 했답니다.’ - 토종꿀맛 …(중략)…
힘이 솟는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게 무엇보다 기쁘다. 월간 《수필문학》지에 매호 연재되는 내 글을 읽고 메일이나 전화, 편지글로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주는 독자가 있기에 글 쓰는데 신바람이 난다.
요즘은 픽션을 근간으로 하는 소설이 픽션의 요소를 줄이고 작가의 체험적 사실을 중시하는 이른 바 팩션(Fact+Fiction)을 시도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수필은 그 반대로 체험을 중시하는 글이지만 픽션적 요소를 약간 가미하여 진부함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글이 되게 하자는 의견이 많다. 이 글은 수필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콩트적 수필로 쓴 하나의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콩트수필’이란 용어가 생경할지 모르나 수필의 형식과 구성을 콩트의 형식을 빌렸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틀과 형식에 강요당하면 결코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거짓말, 허구, 상상력이란 단어가 있지만 문학의 가장 큰 바탕은 상상력이다.
독자를 즐겁게 하고 또는 글 속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라면 성공한 작가라고 나는 당당히 말하고 싶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한 소리를 나열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톡 쏘는 글, 징그럽게도 추악한(?) 글들도 써볼 생각이다. 왜? 그것이 인생이니까. 세상엔 배우고 돈 많은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동전의 양면처럼 상존한다. 나는 어렵고 소외 받은 사람들의 얘기에 관심이 많다.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준 남편과 표지를 그려준 딸, 그리고 모두에게 고맙다.
― 思林 이자야, 책머리글 <작가의 말>